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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SC] 안경 썼던 조선 임금 4명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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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3세기부터 삶에 파고든 안경의 역사

이탈리아에서 처음 제작돼 확산

국내는 선조 때 김성일이 들여와

조선시대 안경·안경집은 예술품

국내 유일 초당대 안경박물관 가볼 만




[ESC]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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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금속코 소뿔테 실다리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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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돕기 위해 쓰는 기구가 안경(眼鏡)이다. 16세기 말 처음 국내에 들어온 서양 문물이다. 한자로 ‘눈 거울’인데, 거울처럼 세상을 맑게 보이게 한다는 뜻일 게다. 세상은 늘 맑은 때보다 탁한 때가 더 많았지만, 이제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일상적으로 안경(또는 렌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대가 됐다. 우리 선인들은 어떤 안경을 어떻게 쓰고 세상을 봤을까. 국내 유일의 안경 전문 박물관인 전남 무안 초당대학교 안경박물관을 찾아가 안경의 역사를 알아보고, 옛 안경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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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3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 지방의 유리공예 제작자들에 의해 안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온다. 이후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안경 수요가 늘고,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지방 공동묘지엔 ‘피렌체에 살았던 안경 발명자, 여기 잠들다’라는 묘비명이 적힌, 13세기 후반 인물의 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13세기에 이미 안경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유럽 초기 안경은 ‘대못안경’

서양에서 안경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그림은, 1352년 이탈리아 화가 톰마소 다모데나가 그린 <위고 대주교의 초상>이다. 두 알짜리 접이식 안경을 코에 걸고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서양 안경의 초기 형태는 ‘대못안경’으로 불리는데, 나무 테에 낀 2개의 렌즈를 대못으로 이어 접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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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들어온 안경으로 평가되는 학봉 김성일 안경 재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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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은 선조 때 외교사절로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학봉 김성일의 것이라고 한다.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대모안경’에 피나무를 파내 만든 안경집이 전해온다. 대모(玳瑁)는 바다거북의 한 종으로, 대모 등껍질로 만든 안경을 대모안경 또는 귀갑테안경으로 부른다.

조선시대 안경이 일반화된 것은 17세기 이후다. 양반들 사이에서 권위의 상징물로 부각되며 너도나도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19세기 들어선 각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기생들도 안경을 사치품으로 차고 다닐 정도였다. 안경알 재료로는 경주 남산에서 생산되는 수정 ‘경주 남석’이 유명했다. 권력자와 부자들은 값비싼 경주 남석을 사용한 안경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렌즈로 만든 안경을 사 썼다고 한다. 도수가 없는 유리안경도 장식품으로 유행했다.

조선의 왕들 중에선 숙종, 영조, 정조, 그리고 고종 황제가 안경을 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52권’(1799년)에, 정조가 눈이 나빠져 안경을 쓰고 경전을 보았고, 안경은 그 당시로부터 200년 전에 들어온 물건이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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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모양 나무안경집(조선 17세기 중기)과 실다리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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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안경이 일반화됐지만, 안경 쓰는 데도 ‘위아래’가 있었다. 젊은 사람이 웃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왕과 신하 사이엔 더 엄격했다. 헌종 때 세도가였던 왕의 외숙 조병구는 안경을 쓰고 왕 옆을 지나다가 질책을 받았다. 이를 두고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대한제국의 독일인 외교고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목인덕)는 심한 근시였다. 고종 황제 알현 때 안경을 벗고 어전에 나갔는데 잘 보지를 못해 비틀거렸다. 이에 고종은 다음부터는 안경을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안경·안경집은 예술품 경지

안경은 귀한 물건일뿐더러, 사용할 때보다 보관해둬야 할 때가 더 많은 생활용품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안경집이 나타나고, 예술품 경지에 이른 아름다운 안경집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안경집 재료로는 구리나 철 등 금속, 오동나무·은행나무·대추나무 등 목재, 상어의 껍질, 비단·삼베 등 여러 가지가 이용됐다. 겉면에는 갖가지 그림을 새기거나, 자수를 넣어 장식했다. 가장 많이 쓰인 재료는 질기고 오래가는 한지였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바르거나 꼬아서 엮고, 옻칠 또는 기름칠을 해 만들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안경집은 안경을 보호하는 본디 기능보다는 장식품의 구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노리개의 장식품으로 매달거나, 천으로 만들어 바늘집으로 쓰기도 했다. 아기 돌 때는 안경집 노리개를 목에 걸어주어 눈병이 없기를 기원했고, 장수를 상징하는 동식물을 그려 넣어 장수를 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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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안경집. 조선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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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테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든 ‘대모테’(귀갑테)가 가장 유명했지만, 소뿔이나 옥, 나무, 철사나 구리 등 금속도 많이 쓰였다. 대모 안경테는 거북이의 장수를 상징하는데다 구하기 어렵고 재질도 단단해 주로 고관대작들이 중국에서 들여와 썼다고 한다.

초당대 안경박물관 담당 황길선씨는 “정조는 옥으로 만든 테를 썼지만, 고종은 대모 안경테를 사용했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모안경을 썼고,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등 기업인 중에도 대모안경을 애용한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 멋내기 안경의 하나로 인기를 끄는 ‘무테안경’은 이미 16세기 말에 나왔다. 테 없이 안경알에 실이나 철사, 소뿔, 금속의 안경다리를 연결한 안경이다. 하지만 안경알이 쉽게 깨지는 등 다루기가 어려워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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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테 실다리안경. 조선 16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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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다리 변천도 흥미롭다. 초기엔 실을 묶어 귀에 거는 ‘실다리 안경’이 대세였다. 가느다란 철사 안경다리도 있었다. 안경 보급이 확산되면서 차츰 테에 다리를 고정시킨 일체식 안경테가 인기를 끌었다. 긴 안경다리가 사용과 보관에 불편했으므로, 다리의 반을 접을 수 있도록 한 이른바 ‘꺾기다리 안경’이 주류였다.

초당대 안경박물관 3000점 전시

이제 안경박물관으로 들어가 각 시대의 안경·안경집들을 만나보자.

초당대는 1999년 국내 처음 4년제 안경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2001년엔 국내 최초의 안경박물관을 개관했다. 2600m²(약 800평) 넓이에 7개 전시실을 갖춘 큰 규모의 박물관이다. 14~19세기의 안경과 안경집, 안경 관련 광학기기, 산업·군사 분야의 특수안경, 사진과 자료 등 소장품 5000여점 가운데 300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무료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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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초당대 안경박물관의 역대 대통령 안경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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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전시실은 국내외의 다양한 안경과 안경집, 각종 사진과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옛 안경 전시실’과 역대 대통령과 명사들의 안경을 전시한 ‘유명인사 안경 전시실’, 그리고 옛 안경·안경집 500여점을 별도로 전시하고 있는 ‘기획전시실’이다.

‘옛 안경 전시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독일의 대못안경과 안경집’, ‘학봉 김성일의 안경과 안경집’이다. 이 대못안경은 1352년께 독일에서 제작돼 세계 최고(最古)의 안경으로 평가받는 안경을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김성일 안경도 재현품인데, 진품은 안동 의성 김씨 종가에 소장돼 있다.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유럽과 조선의 초기 안경 모습을 비교해볼 만하다.

실다리안경, 대모안경, 무테안경, 꺾기다리 안경 등 조선시대 안경과 가죽 안경집, 어피 안경집, 구리 안경집, 자수 안경집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안경집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빛바래고 낡은 모습이지만, 옛 안경과 안경집 하나하나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고, 사용자의 체취도 전해져 온다. 유럽에서 유행했던 목걸이안경, 손잡이안경, 오페라안경 등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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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접이식 오페라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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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 안경 전시실’엔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이 실제 사용했던 안경들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기증서’와 함께 전시돼 있다. 이승만의 안경은 고색창연한 ‘꺾기다리 대모안경’이고, 전두환의 안경은 커다란 금테안경이다. 박정희의 색안경은 실물이 없어 유사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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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이 쓰던 꺾기다리 대모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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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전봉준·맥아더 등의 사진 앞에도 안경이 전시돼 있으나, 진품은 아니고 동시대의 비슷한 제품들이다. ‘특수안경 전시실’에선 해녀 물안경, 산악·레저용 안경, 용접안경 등 산업용 안경, 장갑차용 방풍안경, 전투기 조종사 헬멧과 선글라스 등을 볼 수 있다.

옛 안경의 거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평소엔 문을 닫아두므로 본관 사무실을 통해 관람 신청을 해야 하고, 전시물에 대한 상세 정보 안내가 부족한데다, 해설을 요청해 들을 수 있는 학예사·해설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전국 주요 박물관들에서 옛 안경·안경집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상설 2관-한국인의 일상’ 전시실에도 조선시대의 다양한 안경과 안경집 등이 전시돼 있다. 대구 수성대학교에도 소규모 안경전시관이 있다. 무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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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tician & Glasses : 안경사·안경원과 안경. 안경은 인류의 오래된 시력보조 도구이자 패션 아이템. 안경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스마트 디바이스로도 활용된다. 대량 생산하지 않는 하우스브랜드에서 나온 다양한 안경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자신의 안경을 직접 만드는 수제 안경 공방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무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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