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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유레카] 1817년 베토벤, 좌절과 환희 / 조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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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럽연합(EU) 공식 국가로 채택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제4악장. 유튜브

꼭 200년 전인 1817년,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런던필하모닉협회로부터 영국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교향곡 2곡의 작곡과 초연 지휘를 요청하는 서한이었다. 작품료는 금화 50파운드. 제법 괜찮은 보수였다. 그러나 영국 여행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베토벤은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즈음 그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작곡가로는 치명적이었다. 양자로 들일 만큼 사랑한 조카를 두고는 제수와 양육권 다툼에 휘말렸다. 귀족의 후원을 받지 않았던지라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베토벤이 환호했던 프랑스 대혁명(1789)과 계몽주의 열기는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1804)과 빈 체제(1814)라는 복고 반동으로 시들어갔다. 사람들은 심오한 음악보다는 가볍고 감각적인 음악을 선호했다. 깊은 좌절감, 악화된 건강….

바로 그런 시기에 들어온 교향곡 의뢰는 ‘운명’처럼 심장을 두드렸다.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청년 시절 베토벤은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에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시에 걸맞은 곡을 쓰리라 다짐했다. 이후 짬짬이 작품 구상을 스케치했다. 베토벤은 작곡 의뢰를 받고도 7년을 씨름하다 1824년 마침내 대작을 완성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이었다. 제4악장은 남녀 독창자와 대규모 합창단이 가세해 한껏 고양되고 충만한 숭고미의 절정을 이룬다. 1985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서 ‘유럽 찬가’로 채택했고 지금도 유럽연합 국가로 쓰인다. 공식행사에선 독일어 성악부가 빠지고 기악으로만 연주(▶동영상)된다. ‘인류애’라는 이상을 노래한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낙원의 딸이여/ 우리는 모두 황홀감에 취해 그대의 천상 성소에 들어가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것들을 그대의 마법이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인류는 형제가 되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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