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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역사와 현실]부패의 수렁에 빠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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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명분과 절개를 숭상하는 시대에도 청렴한 관리가 드물었다. 그저 가물에 콩 나듯 하였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김덕룡과 김덕곤 형제의 청명(淸名)을 듣고 기뻐했다(성호전집 제68권).

우선 김덕룡의 일화부터 들여다보자. 그가 평안감사로 재직하던 16세기의 일이었다. 당시 평양은 이미 번화한 도시였다. 재화가 넉넉하기로 전국 으뜸이었고, 그래서였을까. 평안감사로 가기만 하면 대개는 재물의 유혹에 무너져버렸다. 김덕룡은 스스로를 경계했다. 그는 감사 임기 내내 관청에 들고나는 은덩어리와 값비싼 비단을 별도의 수장고에 넣어두고, 일절 손대지 않았다. 이익의 기록에 따르면, 역대 평안감사 중에 청렴한 관리는 김덕룡과 이준경(선조 때 영의정)뿐이라 했다.

김덕룡의 아우 김덕곤은 부러질 만큼 곧았다. 평안도 평사 시절, 그는 어사를 대신해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관리들의 소지품을 검사하였다. 수 명의 역관들이 조정이 수입금지한 물품을 다량 휴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물건들은 대왕대비(문정왕후)가 사사로이 부탁한 것이었다. 당시 김덕곤의 관직은 정6품에 불과했으나, 태연히 그 물건들을 압수해 불살라버렸다.

이조전랑 홍인경이 탄복하여, 김덕곤을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했다. 그러자 명종이 대로하였다. “끝내 이 미치광이를 불러들일 셈인가?” 성난 왕은 홍인경을 하옥하였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던지 왕은 김덕곤을 용인현감으로 좌천시켰다.

명종과 그의 모후 문정왕후의 태도를 보면, 부정과 부패의 깊은 뿌리는 결국 최고 권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청렴은 예나 지금이나 다들 입으로만 외워대는 구호일 때가 많다. 방방곡곡 어디든 탐욕에 물든 무리들이 많다.

16세기 초, 경상도 삼가에도 부패한 수령이 있었다. 그가 재임 중 병으로 죽자, 고을의 어느 선비는 수령의 시체가 담긴 관에 시를 써 붙였다. “염라대왕께서 하늘의 나졸을 시켜 악독한 놈을 데려가셨도다/ 이제 백성들의 시름과 원한이 사라지겠다.”

이 시를 읽은 패관문학의 대가 어숙권이 평하였다. “시가 멋지다고는 말하기 어려우나, 재물을 탐하고 독직을 일삼는 수령을 경계할 만하다.”(어숙권, 패관잡기, 2권)

그러나 나는 어숙권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 어느 탐관오리가 시를 겁내겠는가? 역사의 흐름은 외려 우리의 바람과는 반대로 흘러간 느낌이다. “그 옛날 탐욕스러운 관리는 탐욕의 티가 보였다. 청렴한 사람은 청렴해 보여 구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새 사람들은 교활하여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정조, 홍재전서, 제176권) 정조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18세기는 과연 부패가 심한 시대였던가 보다. 연암 박지원도 세태를 이렇게 기술했다. “근세에 이르러 명예로운 벼슬이 사라졌다. 사대부들은 전에 없이 태만하고 방자해져, 명예를 돌보지 않는다.” “그들의 처신은 잡다한 구실아치나 다름없다. 집과 논밭 따위 재산을 장만하는데 골몰하지 않는 관리가 없다.”(박지원, 연암집, 제3권)

부정부패의 늪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는 했을까? 박지원의 궁여지책은 이러했다. “내 벗에게 충고하노니, 그대는 자중(自重)하여 상관에게 굽히지 말라.” ‘자중’은 무엇인가? 위엄을 부리고 무게 있는 척 굴라는 것인가. 또, ‘굽히지 말라’ 했으니, 상사에게도 오만하게 굴라는 뜻인가? 자중이란 “청렴하고, 간략하며, 신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매사에 신중할” 일이요, 굽히지 않는 것은 눈앞의 요직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지원의 대책이 21세기에도 유효할까 모르겠다. 지난 세월 이 나라에는 이른바 ‘복지안동’하며 권력의 눈치만 보는 관료가 많았다. 그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추상같은 말씀을 수첩에 주워 담기에 급급했다. 그들이야말로 선의를 가장한, ‘적폐’의 성실한 집행자들이었다. 관료들이여, 부디 자중하라. 굽히지 말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사회가 부정과 부패의 고질적인 폐습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예부터 식자들은 근검 곧 개인의 윤리적 행위에서 문제의 답을 구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구한말의 대신 김윤식도 얼마 안 되는 전답을 아들들에게 나눠주며 신신당부하였다. “수확이 비록 얼마 안 되더라도, 너희가 근검하여 애써 경작하면 의식의 걱정은 없을 것이다. 절약하여 남는 곡식을 저축하라. 그러면 위급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얼마간 구제할 수 있으리라.”(김윤식, 운양속집, 제4권)

좋은 말이지만, 개인의 도덕심에 정의를 호소하는 사회는 허망하다. 연전에 어느 장성은 수백억원의 혈세를 횡령하였다. 그런데도 법원은 그의 불법을 “생계형 비리”로 간주하고 가벼운 처벌로 넘어갔다. 나라의 법이 물러도 너무 무르다. 전직 대통령인 어떤 사람은 수십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멋대로 탕진했으나, 처벌은커녕 아직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묻는 여론을 질책하였다. “지나친 적폐 청산은 역사의 퇴행”이란다. 부패와 무능으로 얽히고설킨 폐풍의 늪에서 우리는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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