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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회전식 교차로와 과속방지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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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변호사

충청일보

[이영란 변호사]올해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작은 방학이었다. 무려 열흘이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흘의 연휴기간 동안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떠났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제주도를 다녀왔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제주만의 독특한 점을 알아냈다. 육지와 다른 자연 풍광은 두말할 것 없는 것이고, 육지에도 있지만 제주에 유독 많은 것! 그것은 회전식 교차로와 과속방지턱이었다.

제주에는 유독 회전식 교차로가 많다. 시내에도, 중산간도로에도, 5.16도로에도. 정말이지 곳곳에 있다. 특히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종단하는 지방도로나 동과 서를 횡단하는 지방도로에 많았다. 처음에는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각자 알아서 통과하는 게 맘에 들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회전식 교차로를 들고 나는 곳곳에 과속방지턱이 있었다. 차량들이 안전하게 회전식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도록 미리 속도를 줄이라고 설치된 것들이다. 하나도 아니고 연달아 두 개씩, 그러니까 진입할 때 두 개, 빠져 나올 때 두 개, 총 네 개를 통과해야 했다(이건 여행 끝 무렵 나름의 규칙성을 발견한 것인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낮에야 시야가 밝으니 내비게이션이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지 않아도 잘 보이기 때문에 미리 속도를 줄여서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런데 밤에는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미리 말해 주어도 속도를 줄이는 타이밍을 놓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뒷자리의 남편이 불평을 했다. 미안했다. 핑계를 댔다. '잘 안보여서 그랬다, 과속방지턱 표시가 희미해서 없는 줄 알았다' 나름 억울할 때도 있어서 모처럼 간 여행지에서 부부싸움을 할 뻔 했던 적도 있다.

제주 여행을 하는 내내 만난 수많은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스친 생각이 있었다. '아주 가끔은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마치 과속방지턱을 부드럽게 넘기 위해 미리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름 긴 제주여행을 마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에서 만났던 수많은 회전식 교차로와 과속방지턱이다.

이유도 알 수 없고, 어이도 없지만 사실이다. 굳이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보자면, 수많은 회전식 교차로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로 계속 돌아나가야 하는 현실 생활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내게 잠시나마 속도를 줄여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게 해준 여행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퇴근길에 과속방지턱을 넘으면서 아주 잠시나마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젠 가을이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계절의 과속방지턱 앞에 선 기분이다. 숨고르기를 해야 할 때다.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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