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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심층팩트체크]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둘러싼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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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전제를 가지고 공방을 벌이고 있어 논쟁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경향신문은 헌법재판소장을 둘러싼 쟁점의 진실이 무엇인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바탕을 두고 확인했다.

■ 쟁점 1. 권한대행 체제 헌재가 요구했나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 1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촉발했다. 박 대변인은 그날 “지난 9월1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간담회에서 재판관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직 계속 수행에 동의했습니다. 이에 청와대는 김이수 헌재소장 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기자들을 따로 만나서는 “재판관 간담회에서 그렇게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것에 대해 청와대가 동의하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두 문장에 불과한 그의 말은 호응하지 않는다. 헌법재판관들은 지난달 “(김이수 권한대행에게 헌재소장 국회 동의안 부결이라는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권한대행을 교체할 이유는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변인은 ‘권한대행을 교체하지 않는 재판관들 뜻에 따라, 헌재소장을 공석으로 유지하겠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는 원인(소장 공석)과 결과(대행 체제)를 뒤집은 것이다.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는 헌재법에 따라 ‘부득이한 경우’에만 가동된다. 따라서 헌재가 권한대행 체제를 요구했다면, 부득이한 상황을 만들어달라고 청와대에 요구했다는 뜻이 된다. 부득이한 경우에 대행 체제가 된다는 근거는, 헌재법 12조 4항 ‘헌법재판소장이 궐위(闕位)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재판관이 헌법재판소규칙으로 정하는 순서에 따라 그 권한을 대행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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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2. 헌재소장 임명에 선결과제가 있나

헌재 국정감사를 앞두고 나온 청와대 발언은 사흘 뒤인 지난 13일 국정감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날 오후 다시 박수현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발표한다. 헌재소장 임기 문제가 해결되어야 헌재소장을 임명하겠다는 게 골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제에 헌재소장의 임기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먼저 헌재소장의 임기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마치면, 대통령은 헌재소장을 바로 임명할 계획입니다”라고 했다.

이른바 헌재소장 임기 문제는 현직 재판관 가운데 헌재소장을 임명하면, 헌재소장 임기는 재판관 잔여임기인지 새롭게 6년을 시작하는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헌재소장을 임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대행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말 이것이 문제라면 지난 5월 김이수 현직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지명할 때 문제 삼았어야 한다. 설령 이제 와서 심각성을 알게 됐다 해도 헌재소장 임명과 같은 시급한 사안을 시간을 요하는 국회 입법에 연계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현직 재판관 가운데 헌재소장에 임명된 사례는 2013년 취임한 5대 박한철 소장이 처음이다. 그는 재판관 잔여임기가 3년10개월인 시점에 취임했고, 이 기간만 헌재소장에 있었다. 이로써 헌재소장 임기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것이 법조계의 인식이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은 선택지가 많다. 현직 재판관 가운데 헌재소장을 임명하면 1~2년 뒤에 다시 임명할 수 있고, 공석인 대통령 몫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앉히면 6년 임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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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3. 소장 임기를 국회가 해결할 수 있나

헌재소장 임기를 6년으로 정하는 것은 도리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문제는 대법원과 비교해서 보면 이해가 쉽다. 헌법에 따라 법관은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 나뉘며 (헌법 105조 1~3항) 임기는 각각 6년, 6년, 10년이다. 이렇게 대법원장의 임기를 따로 정한 것은 헌법상 지위가 대법관이나 판사와 달라서다. 그래서 연임·중임 규정도 다른데, 대법원장은 중임도 불가능, 대법관은 연임만 불가능, 판사는 연임이 가능하다.

이와 달리 헌재의 경우 재판관 임기만 있고 헌재소장 임기는 없다. 이유는 헌재소장의 헌법상 지위도 재판관이라서다. 헌재에는 재판관만 9명이 있고, 이 중 한 사람이 헌재소장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이 대법원장-대법관으로 상하관계인 것과 달리 헌재는 재판관 9명이 모두 동등하다. 대법원 판결문에 ‘대법원장 양승태’라고, 헌재 결정문에는 ‘재판관 박한철’이라고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거는 ‘헌재소장에 대한 언급 없이’ 재판관 임기는 6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고만 정한 조항(헌법 112조 1항)이다.

적잖은 전·현직 헌법재판관들은 “소장 임기를 헌재법에서 따로 정하면 헌법의 취지를 왜곡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헌재소장의 임기를 6년으로 만들려면 헌재법이 아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헌재소장 임기 6년은 헌법 결단적인 면이 있어 법률로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발행한 <주석 헌법재판소법>도 “임기 6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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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계속되는 중에도 정치권은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 17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헌법이 보장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현행법에 명시된 것처럼 헌법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하는 경우, 박한철 헌재소장처럼 새로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고 그분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 111조 4항의 ‘재판관 중에서’는 “헌재소장의 지위도 재판관”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역대 5명의 헌재소장이 모두 ‘재판관 중에서’ 나왔다. 즉 재판관이자 헌재소장이었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으니 논쟁이 끝이 없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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