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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석혜탁의 만사유통] 유통업체들이 꼭 지녀야 할 ‘젠더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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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과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유통업체들은 경제적 이슈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현안에도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더욱이 유통업계는 여성고객의 비중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전사적 차원에서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키우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젠더 감수성에 대한 정의야 학자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간단하게는 ‘젠더 이슈를 감지하는 능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보다 광범위하게는 젠더 간 차이를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그 차이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영향, 나아가서 성차별과 젠더 불평등을 인식하는 능력까지 포괄한다.

롯데월드타워는 10월 유방암 예방의 달을 맞이해서 저녁 시간대에 3시간 동안 핑크색 조명을 밝혔다. 이는 유방암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의 ‘핑크리본’ 캠페인이었다. 123층 555m로 국내 최고층, 세계 5위 빌딩인 롯데월드타워가 핑크빛으로 물든 것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고, 시각적으로도 장관이었으며, 자연히 홍보효과도 높았다. 롯데는 일찍이 2013년에 그룹 차원에서 ‘mom편한’이라는 사회공헌 브랜드도 론칭한 바 있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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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방암 예방의 달’을 맞이해서 핑크색 조명을 밝힌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타워•롯데월드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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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는 한국유방건강재단과 협력하여 유방암 환자 전용 속옷을 판매했다. 앞 여밈 장치가 있어 일단 입기가 편하고 무엇보다 수술 직후 착용하기 좋은 레저 브라, 신축성과 통풍성을 높인 보정 브라 등 유방암 환자를 고려한 다양한 기능성 속옷과 유방암 방지를 위한 노와이어 속옷을 함께 내놓았다. 자가검진을 통한 유방암 예방법도 안내했다.

올리브영은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원하는 ‘핑크박스(Pink Box) 나눔 캠페인’을 전개한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및 여성위생용품 협력업체들과 손을 잡고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여성학자 박이은실 박사는 ‘월경의 정치학’에서 “초경을 경험하는 것이 어린 여성의 심리적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녀들의 심리적 요구를 반영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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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박이은실 박사의 저서 <월경의 정치학> ©동녘


‘소녀들의 심리적 요구를 반영한 제도적 지원’의 주체가 꼭 정부나 지자체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업에서도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이런 지원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다. 핑크박스(Pink Box) 나눔 캠페인은 생리대를 구매할 돈이 없어 어린 학생들이 휴지나 신발 깔창을 대신 썼다는 비극적인 뉴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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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이 진행하는 생리대 무상 지원 프로그램인 핑크박스 나눔 캠페인 ©cj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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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박스는 올리브영 임직원들이 직접 만든 친환경 면생리대, 올리브영 및 협력업체들의 매출액 일부를 모아 기부한 일회용 생리대 등을 에코백에 넣은 형태로 꾸려진다. 올리브영은 앞으로 시각장애인의 얼굴 화장을 도와주는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새로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여성의 생애주기(Life Cycle)까지 고려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하이(H!) 캠페인’을 고안했다. 홈쇼핑 고객의 8할을 차지하는 여성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연령대별로 맞춤형 지원책을 도입한 것이다.

우선 10대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을 지원하는 ‘하이걸(H!-Girl) 프로젝트’가 있다. 만 13세가 넘으면 정부의 무료 자궁경부암 접종 지원이 끝이 나 1인당 40만~50만원 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작지 않은 액수다. 게다가 보건소나 병원 등 의료기관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지방 소도시의 경우에는 백신 접종이 쉽지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현대홈쇼핑은 강원도 양구, 전라남도 영광과 영암 등에서 여중고생들 대상으로 예방 백신 접종을 지원하는 활동을 수행했다.

20~30대 저소득 출산 여성에게는 젖병과 내의, 체온계, 배냇저고리, 속싸개 등 신생아 필수 육아용품을 담은 ‘하이맘(H!-Mom) 박스’를 제공한다. 40~50대 여성에게는 갱년기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건강 강좌를 마련하고, 60대 이상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해서는 중증질환에 소요되는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각 연령대의 특성에 부합하는 다양한 지원제도의 실행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면세점 운영 법인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운영하는 갤러리아면세점63은 다문화가정 산모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출산 축하 선물세트를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 기증했고,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육아로 퇴사한 파트너가 재입사 후 시간 선택제 매장 관리자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리턴맘 바리스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통업체들 간에 벌이는 판촉 경쟁은 정말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우리 점포로 유입시켜야 하는 살풍경한 제로섬 게임이다. 그렇다면 누가 젠더 감수성이 높은지, 어떤 기업이 모성보호에 더욱 앞장서고 있는지, 어느 업체가 더 여성친화적 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지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 이는 서로 긍정적 자극을 주는 것은 물론 한쪽의 이익이 곧 다른 쪽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는 논제로섬 게임이다. 앞으로는 후자에 해당하는 유형의 경쟁을 더 자주 보게 되기를 바란다.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비즈코노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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