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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어쨌거나 해피엔딩]김금희의 짧은 소설 ‘이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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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권이 리조트에 도착해서 본 것은 넓은 잎의 열대나무들이 바람을 타는 것이었다. 벽면 없이 가운데가 뚫려 있는 로비층은 그동안 형권이 보았던 어떤 호텔보다도 호화로웠는데 그 호화로움이 대리석이나 눈에 띄는 칠 장식이 아니라 오로지 나무만으로 구현되고 있어서 놀라웠다. 테이블과 소파 같은 가구만이 아니라 카운터 뒤에 걸린 액자도 나뭇조각을 일일이 붙여 석양의 해변 풍경을 표현해낸 것이었고 티테이블 위 은은한 스탠드의 몸체에도 나무껍질이 장식되어 있어 꼭 일본식 분재처럼 보였다.

형권이 무언가에 당황한 듯 뒷걸음질친 것은 그렇게 나무와 바람만으로 만들어낸 어떤 향락의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런 풍경에는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는 거리낌이 있었다. 공포나 외경과도 비슷했다. 어쩌면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밀림을 끼고 있는 이국의 리조트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릇 이국이란 좀 다르고 알 수 없고 어쩐지 비밀스럽고 꺼려지며 쉽게 불안해지는 것이니까. 물론 그는 한때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가서 건설현장을 감독한 사람이었지만 젊은 시절 맞닥뜨린 그 이국이란 이미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라 텅 빈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무공처럼 팽팽한 표면의 이질감은 아니었다. 형권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내에게 얼마라고 했지?라고 물었다. 아내에게서는 1박에 한 이십이나 되나, 하는 시들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십만원이면 이십만원이지 한 이십은 뭐야, 뭐가 그렇게 안 정확하고 흐리멍텅해?”

“흐리멍텅은 무슨, 여행사에 비행기며 심야에 떨어져 1박한 호텔이며 리조트며 다 해서 돈을 줬는데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리조트비를, 그냥 인터넷에 쳐보니까 그 정도 하는구나 싶은 거죠.”

그렇게 대화하는 동안 직원이 형권 일행에게 다가와 숙소가 있는 동까지 태워줄 셔틀버스로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짐은 포터가 들고 직원은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충분할 거리를 굳이 앞장섰는데 가서는 긴 의자를 가리키며 친절하게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형권은 앉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다시 여기까지 내내 앉아서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냥하게 권하는 태도에 떠밀리듯 대나무로 엮은 벤치에 앉았다.

“호텔에서 일해 그런가 영어가 참 물 흐르네. 잘하는 거잖아, 저거면.”

“여기 사람들 영어 대개들 잘해요.”

아들이 대답했다.

“영국 식민지였잖아요,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고요.”

“그러면 너랑은 잘 통하겠구나.”

아들은 형권의 말에 웃는 것도, 굳은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는 않은데…… 필요한 것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그렇지는 않다니, 너 내가 그런 자신 없는 말 쓰지 말라고 안 했냐. 가능성이 51퍼센트만 되면 일단 그건 그런 거야. 나중은 어떻든 간에, 패기 있게 확신 있게 신뢰 주며 말하는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아들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윽고 셋은 셔틀버스를 탔다. 이미 거기 타고 있던 서양여자가 발목을 삐었는지 인상을 써가며 스프레이를 다리에 뿌리고 있었다. 그들이 타자 안녕, 하고 인사했고 날씨에 관한 몇 마디를 하는 것 같더니 이윽고 아들과 꽤 긴 대화를 나눴다. 형권은 그 장면을, 이제 스물한 살이 된 아들이 외국인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대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았는데 중간중간 언급되는 표현을 들었을 때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건’에 대해 말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실종, 떠도는, 밀림, 믿을 수 없는, 무서운, 같은 표현들이었다. 여자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아들과 한동안 이야기하더니 이윽고 휴가 잘 보내, 인사하면서 숙소동으로 들어갔다. 선베드가 놓인 야외수영장과 자쿠지를 지나 그들도 방에 도착했다. 전면의 창으로는 넓은 백사장 끝에서 넘실대는 인도양이 보였고 파도가 꽤 높았다. 바다를 가까이 보기 위해 형권이 테라스 출입문을 열자 현관 쪽에서 탕탕탕 하고 노크 소리가 났다.

“누구야?”

형권이 출입문을 닫으며 약간 소리를 높여 현관을 향해 묻자 다시 탕탕탕 소리가 들렸다.

“아빠, 그건 그냥 출입문이 열렸다고 알려주는 소리예요. 침입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가 4층인데 어떻게 들어온단 말이야?”

“그럴 수 있죠, 테라스와 테라스가 이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아까 그 외국인 여자가 여기 별로 안전하지가 않다고 하더라고요.”

형권은 그렇지 않아도 그 대화가 신경 쓰였던 터라 더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내가 베개 종류를 골라서 카운터에 알려주어야 한다며 말을 끊었다. 베갯속의 종류를 라텍스에서 오리털까지 그 함유 정도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어,라고 물을 때마다 아내가 자꾸 의견을 구해서 결국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라고 형권이 짜증을 냈다. 이제 막 방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그럼 뭐가 중요해요?”

베개 리스트지를 들고 있던 아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쟤가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잖아. 안전하지 않다잖아, 여기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아들은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가 뭔가를 수습하듯이 중요하기는 한데요,라고 좀 더 확신을 얹어 말했다. 아들은 그 여자가 이 리조트에 허락받지 않은 투숙객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경고했다고 전했다. 들어올 때부터 일일이 투숙객 명단을 확인해야 경비초소를 통과할 수 있는데 허락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머물 수가 있는가. 형권이 그 지점에서부터 말이 안된다, 여자가 뭘 잘못 알고 있겠지, 싶어서 믿지 않으려 하는데 아들은 아주 확신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의 진지하고 무거운 그래서 어쩐지 차갑기까지 한 얼굴로 체크아웃한 상태로 리조트에서는 나가지 않는 남자래요,라고 덧붙였다. 오래전 가족과 함께 온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과 같이 돌아가지 않고 리조트에 남아서 부대시설들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낮에 해먹에 누워 있기도 하고 밤에는 해변에 묶어둔 카약에서 자기도 하는데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하고 허리가 굽고 어깨가 안으로 말려서 마치 밀림의 오랑우탄 같다고. 그가 그래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기 때문인데 어쩌면 그래서 더 기괴하게 느껴진다고. 여자는 그 남자가 불쑥 복도에 나타나 놀라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고 했다. 자기를 놀라게 하고 총총히 사라지는 남자에 대해 귀띔해준 사람은 하우스 키퍼였다고.

물론 형권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이렇게 관리가 잘되는 리조트에서 그런 불청객이 어떻게 오래 머물 수가 있으며 여기까지 올 정도이면 최소한 중산층은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사람이 왜 여기서 나가지 않는단 말인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왜 이렇게 짐승이, 이국의 오랑우탄이 되기를 선택해. 오랑우탄이라니. 형권은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를 믿어버린 아들이 한심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는 말이야, 너는 좀, 가능성을 따져보고 이야기를 해. 사람들이 대체 믿겠나, 이게 몇 퍼센트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란 말이다.”

그러자 아들은 뭔가 말을 더 하려다가 참으면서 짐을 풀고 있는 형권의 아내에게 돌아가 라텍스로 할까, 엄마, 하고 말을 걸었다.

“여기 라텍스가 유명하다는데, 베개가 편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잖아요. 그래야 좋은 꿈도 꾸지. 엄마 며칠 통 못 잤잖아.”

리조트에서의 하루하루는 다를 게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들이 테라스로 몰려드는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뷔페로 조식을 먹었고 사람이 직접 서있을 정도로 거대한 대형 체스판이 있는 정원을 산책했으며 바다에 발을 담갔다가 수영장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일몰 시간에는 구름이 역동성 있게 퍼져 있는 하늘을 비추며 소멸해가는 태양을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다. 저녁이 되면 리조트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칵테일과 카나페 같은 주전부리를 먹기 위해 거의 모든 투숙객들이 몰려들었는데 형권이 문득 생각나 찾아봐도 오랑우탄을 닮은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는 없었다. 다만 투숙객들의 상당수가 백인들이었고 그 사이에 껴있는 자신이 좀 눈에 띈다고 느꼈을 뿐이다. 형권은 그때 그 발목을 다친 여자를 발견해 정말 그런 남자가 리조트에 있는지, 사실인지, 아니면 아들이 괜히 부풀려 얘기한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막상 그 앞에 서자 여자가 뭔가 경계하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았고 그 순간 긴장해 이봐요, 실례합니다, 그때 그 남자, 남자,라고 더듬거리다가 돌아섰다.

하지만 아들과 아내가 그들만의 다정한 대화를 나눌 때 혹은 걷다가 문득 해안에서 큰 바람이 불어 열대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리며 밀림의 깊은 내부를 그 텅 빈 공간을 통과하는 바람의 소리로 은밀히 암시할 때 형권은 뭔가 긴장과 불안이 들며 떠올리는 것이었다. 리조트에서 체크아웃하는 날짜가 언제이고 그것의 절차는 어떠한지를, 택시를 타고 도착해야 하는 공항의 이름과 타야 할 비행기의 편명을 그리고 자기의 직장이나 직급 같은 것을. 물론 그러다가도 그런 자신에게 헛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옮겨온 것 같았다. 아들에게서, 아니면 그 여자나, 혹은 정말 있을지도 모를 어떤 남자에게서. 대체 이 리조트 안의 사람들 중 얼마나 그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불운한 인생에 대한 풍문이 날아와 형권의 마음에 안착한 건 분명했다. 그러니까 형권은 정확하게 흐리멍텅하지 않게 계속계속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낙오한 사람이라니, 돌아가지 않은 사람이라니, 그런데 정말 오랑우탄이라니, 하와이안 셔츠라니.

▶필자 김금희

경향신문
소설집으로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김금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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