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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감 증인 자진 출석…SKT CEO의 '남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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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비 전쟁터'에 갑작스레 증인 자진 출석한 SKT CEO

어제(13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과기정통부 국정감사는 '통신비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의사 진행 발언을 빙자한 정치 공세도 일부 있었지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너무 길어 보통 '과방위'라고 부릅니다.) 첫 국감 날은 그럭저럭 정책적인 이슈에 집중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료 폐지 공약 논란, 완전 자급제 문제, 과도한 단말기 비용 문제 등 통신비와 관련된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물론 기존에 나왔던 얘기들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운 팩트를 담아 리포트로 제작할 게 많지 않았지만, 의원들이 국민적인 관심사인 요금제 이슈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분명 긍정적이었습니다.

국감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4시쯤, 증인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원래 이번 국정감사 증인으로는 통신3사 CEO들과 삼성, LG같은 단말기 제조사 사장급 임원, 네이버·다음카카오 총수, 구글, 페이스북 대표 등이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국내 ICT 분야의 대표 선수가 총망라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단 두 명만 예외였습니다. SKT 박정호 CEO와 최상규 LG전자 국내영업총괄 사장이었습니다. 특히 통신비 이슈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던 국감장에 국내 최대 통신사 CEO가 나타난 것 자체가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종합감사도 있는데 첫 국감장에 '증인 자진 납세'를 하며 스스로 나타났던 겁니다. SKT CEO가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왔던 건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이후 8년 만이었습니다.

● "출석해줘서 고맙다"…오히려 고마워했던 여야 의원들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면 국회법에 따라서 출석하는 게 원칙입니다. 나오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벌 될 수도 있고, 실제 기업 총수 가운데 수천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전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감장에, 특히 기업인이 증인으로 서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겁니다. 큰 마음 먹고 나왔지만 별 대답도 못하고 돌아가는 건 애교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여야 의원들의 정치 공방에 희생양이 될 수도 있고, 한 번도 듣지 못한 험악한 말로 갖은 수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증인 선서를 하기 때문에 위증을 했다가는 안 나오는 것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칫 본전도 못 찾는 장사가 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입니다.

박 사장의 출석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신선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다수 의원들이 국감장에 증인으로 순순히 나와 준 SKT CEO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출석해줘서 고맙다", "출석한 사람만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여당 의원은 정회 시간에 박 사장을 "착한 증인"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출석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의원들한테 이리 많은 칭찬을 듣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그동안 국감 증인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나오지 않는 게 관행처럼 이어져 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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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금제 논란' 하고 싶은 얘기 다한 SKT CEO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KT 황창규 회장, LG유플러스 권영수 부회장이 불참한 자리였기 때문에 자칫 SKT 박정호 사장만 매를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할 때 보통 의원들은 증인의 답변 기회조차 주지 않고 몰아세우지만, 자진 출석 때문인지 의원들의 분위기가 워낙 우호적이었습니다. SKT는 CEO입을 통해 자기들이 해명할 건 해명하고, 시인할 건 시인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통신비 논란의 핵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료 1만1천원 폐지 공약이 있습니다. 음성+데이터+문자를 묶어서 패키지로 내놓는 스마트폰에 과연 기본료라는 개념이 있냐는 논란부터, 1만1천원을 내리는 게 가능한 것이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참고인으로 나왔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총장은 기본료 성격이 스마트폰 요금제에도 당연히 숨어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호 사장은 "데이터 요금제에는 기본료라는 개념이 없다"며 "통신비는 20년간 3만 원에서 3만 9천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최신 스마트폰 가격이 올라가면서 단말기 할부금이 통신비에 합쳐져 나오기 때문에 통신비가 비싸다는 누명을 쓰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단말기 구입과 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개념인 "단말기 완전 자급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박 사장은 "단말기와 통신비가 분리되면 가계 통신비 인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다른 생태계들도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찬성하는 SKT의 입장을 국회 발언을 계기로 공식화시켰습니다. 데이터 요금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객 부담을 고려해 요금제를 전향적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말이 무슨 뜻일까 많은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5G 시대를 앞두고 뭔가 큰 틀의 요금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로밍 요금 폭리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9900원이라는 해외 로밍이 사실 실 데이터 제공은 100MB에 불과하고 그 뒤로는 아주 느린 상태여서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잘못을 대체로 인정했습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파는 수준"이라고 공격했고, 한국당 김정재 의원은 "국내 요금보다 로밍 요금이 200배 비싸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박 사장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안내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통신사들과 로밍 요금을 현실화 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SKT 입장에서는 주요 현안에 대해 충분히 발언하면서 남는 장사를 한 셈이 됐습니다.

● "국민의 절반이 우리 고객"이라는 SKT CEO…다른 CEO들의 해명도 들을 수 있을까

박정호 SKT 사장은 증인으로 답변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절반이 우리 고객인 만큼 당연히 나올 생각이었다"며 "국회에서 문제를 지적당하기 전에 먼저 고치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에서 지적 사항을 숙제로 안고 가는 CEO로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 담겨 있는 말이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을 고객으로 갖고 있는 나머지 통신사 CEO들은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했습니다. 종합 감사 때 한 번 더 국감에 나올 기회는 있지만, 황창규 KT 회장이나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또 다시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 출장이 잡혀 있다며 훌쩍 출국할지도 모릅니다.

박정호 사장의 국감 증인 답변을 보면서 3사 CEO가 한꺼번에 모여 답변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호갱이라는 분노가 들게 만드는 통신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통신사 CEO들이 어떤 개선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듣는 건, 어쩌면 소비자들의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행위가 있었다면 CEO들이 대외적으로 시정 의지를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국정 감사 기간에 통신비 관련한 이해당사 기업들의 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진솔한 논의가 진행된다면, 국감이 마냥 무의미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연합뉴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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