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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약소국 눈물`먹고 명성키운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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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해악을 끼친 국무장관 중 한 명이었다고 믿는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에 나온 버니 샌더스는 헨리 키신저에 대한 평가를 이같이 정리했다. 그는 "나는 헨리 키신저가 내 친구가 아니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돼도) 키신저의 조언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그를 평가절하했다.

키신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2015년 미국 역사학자 10명에게 '키신저는 선인가 악인가'라고 물은 결과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창의적 외교를 구사했다"는 긍정적 평가에서부터 우리 시대 가장 과대평가된 인물"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키신저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대체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지나치게 앞세운 나머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약소국을 짓밟아왔다는 데서 나온다.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타국 정치에 대한 개입이나 독재에 대한 옹호도 서슴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대표적 사례는 1970년부터 추진한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 쿠데타 지원이다. 키신저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부추겨 남미에서 가장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온 칠레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1974년 대통령에 취임한 피노체트는 훗날 칠레 역사 최악의 군부독재자로 기록됐다. 지난 2012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17년 간 이어진 피노체트의 집권 기간 동안 인권탄압 피해자는 4만여 명, 사망·실종 인사는 3225명에 달한다.

1970~1980년대 남미 군사정권들이 자행한 정치 탄압 작전 '콘도르 작전'의 배후에도 키신저가 있었다. 콘도르 작전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추적·납치·살해 등 인권유린 행위를 말한다. 키신저는 이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나 미국 정부의 경고를 막아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키신저의 묵인 속에 6만여 명 이상의 남미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된다.

키신저는 남미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 속에 냉전 시대 이후 중남미 지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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