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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존재 드러난 기무사 기록…전두환 행적도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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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조위 기무사 자료 8천쪽 발굴,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 기대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정회성 기자 = 수천 쪽에 달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5·18 관련 미공개 기록물이 37년 만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기무사는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으로, 모체는 보안사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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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전두환(오른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 신군부 최고 실력자였던 전두환이었던 만큼 기무사 미공개 기록물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8천여 쪽, 25권짜리 기무사의 미공개 자료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고 12일 밝혔다.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는 5·18 항쟁사에서 공식적으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부대이나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보고계통은 공수여단 등 일선 부대→전남 계엄분소(31사단)→전남북 계엄분소(전투교육사령부)→2군사령부→육군본부→계엄사령부로 올라가 지휘는 그 역으로 내려갔다.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을 기점으로 향토부대인 31사단이 보고계통에서 빠지고 전남북 계엄분소가 그 자리를 대체하지만, 이는 허울뿐인 지휘계통이라는 게 5·18 진실규명 활동을 벌여온 단체와 학자들의 중론이다.

5·18 관련자들은 당시 실제 보고계통이 공수여단, 광주 505보안부대, 보안사를 거쳐 신군부 핵심으로 전달, 이에 기초한 명령이 계엄사령부로 전달돼 공식지휘 절차를 타고 내려갔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주장은 경찰력만으로 시위진압을 건의했던 31사단장 의견이 무시되고 공수여단 증파 결정이 일방 통보된 사실, 계엄군끼리 벌였던 오인 교전, 도청 앞 집단발포 후 이희성 계엄사령관 이름으로 뒤늦게 발표한 자위권 천명 담화문 등 여러 정황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또 2005∼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에 제출된 66권 분량 기무사 자료는 보고계통 바깥에 있던 부대가 권한 이상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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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
[5·18기념재단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관련자들은 기무사가 생산한 5·18 자료가 남김없이 공개되고 행간의 맥락까지 전부 파악한다면 헬기 사격 의혹을 받는 항공대 작전내용은 물론 전두환의 숨은 행적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보안사 내부 자료인 '5공 전사'에 따르면 전두환은 5월 21일 군 주요 지휘관이 참여한 자위권 발동 국방부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해당 자료에서 '전 각하'로 지칭된 그는 5·18 당시 비공개적으로 광주를 방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건리 국방부 5·18특조위원장은 "신군부가 창설한 511분석반 등이 왜곡, 조작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군 자료의 행간을 잘 읽어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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