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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보이진 않아도… 브라질 적신 희망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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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교향악단 한빛예술단… 브라질 상파울루주 정부 초청 공연

동아일보

25일(현지 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타투이 ‘프로코피우페레이라’ 극장에서 한빛예술단과 상파울루 14개 대학연합 합창단이 현지 음대생과 예술가, 시민, 교민 등 420여 명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한빛예술단 제공


“하나 둘.”

25일(현지 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주 타투이시 ‘프로코피우페레이라’ 극장. 나지막한 한국어 신호에 맞춰 교향악단 단원들의 손이 움직였다. 지휘에 맞춰 움직이는 여느 교향악단과 달리 무대에는 지휘자도, 악보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화음은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상파울루주 정부의 초청을 받은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향악단 ‘한빛예술단’이 21∼25일 세 차례 현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빛예술단 단원 47명은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실력파다. 단원 모두 중증시각장애를 갖고 있어 지휘자도, 악보도 볼 수 없지만 혹독한 연습으로 장애를 극복해 ‘기적의 오케스트라’라고 불린다. 국내외 공연 횟수가 매년 100회가 넘지만 남미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빛예술단이 상파울루주 정부의 초청을 받은 건 브라질에서 공연 기획자로 일하는 한국인 김현아 씨가 다리를 놔준 덕분이다. 김 씨는 지난해 제주에서 우연히 한빛예술단의 공연을 본 뒤 이들을 브라질 예술가들에게 소개했고 이게 주정부의 초청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첫 공연은 브라질 ‘장애인의 날’(21일)에 맞춰 100년의 역사를 지닌 ‘상페드루’ 극장에서 열렸다. 관객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보냈다. 특히 브라질 유명 기타리스트 하파에우 아우트루의 반주에 맞춰 브라질 국민 애창곡 ‘더 걸 프롬 이파네마’를 부른 예술단 보컬 이아름 씨의 유창한 포르투갈어에 현지인들은 찬사를 보냈다.

한빛예술단의 공연은 브라질에서 큰 화제였다. 현지 방송 뉴스에도 소개됐고 호텔 직원들은 단원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현지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음대생은 한빛예술단에 꼭 입단하고 싶다고 문의하기도 했다.

25일 마지막 공연 좌석은 모두 매진됐다. 이전 공연을 놓친 상파울루 예술가, 주민과 교민들이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린 것이다. 공연의 대미는 퓨전 국악곡 ‘내 마음의 아리랑’이 장식했다. 한빛예술단의 연주에 맞춰 상파울루 14개 대학 연합 합창단원들이 완벽한 한국어로 아리랑을 노래했다. 협연을 위해 2개월 전부터 한국어를 맹연습한 결과였다. 관객들의 거듭된 앙코르 요청에 예술단은 다시 화음을 맞췄고, 관객들은 선 채로 마지막 공연을 만끽했다.

합창단원 데니시 시우베이라 씨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예술단을 치켜세웠다. 한빛예술단의 김종훈 음악감독은 “긴 비행시간과 시차로 힘든 일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호응에 힘을 냈다. 최고의 하모니를 들려준 합창단원들에게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음악에는 국경도,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도 없다는 사실을 지구 반대편에서 확인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한빛예술단은 현지 교민들의 요청으로 28일에도 추가 공연을 한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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