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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상징' 양대 지침,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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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용노동부가 25일 공식 폐기를 선언한 ‘양대 지침’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 1월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것이다. 노동부 장관이 전국기관장 회의에서 내려보낸 지침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부 가이드라인 형식이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법 이상의 위력을 발휘해 고용불안을 키우고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많았다.

양대 지침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가리킨다. 그 중 170쪽에 이르는 공정인사 지침은 이른바 ‘저성과자’들에 대해 기업이 일정한 교육을 거쳐 성과가 나아지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방법은 근로자의 비리에 따른 징계해고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 둘 뿐인데,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다 ‘일반해고’라는 범주를 덧대어 특별한 비리나 경영상의 이유 없이도 노동자를 잘라낼 길을 터줬다.

이 지침이 나오기 전에도 기업들은 ‘밉보인’ 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심리적으로 압박해 퇴직시키곤 했다. 이런 음성적인 행위를 정부 지침으로 정당화해준 것이었고, 변칙적인 해고에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준 셈이 됐다.

이런 지침은 고용보호 원칙을 중시해온 법원의 판결 흐름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노동위원회에서도 기업이 일방적으로 평가한 ‘저성과’라는 잣대가 법적인 해고 사유로 인정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민주노총이 2001년부터 15년간의 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에 대한 판정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3만5335건 중 저성과자 해고는 4.7%에 불과했다. 정규직 저성과자 해고를 정당하다고 본 경우는 15년간 11건뿐이었다. 그런데도 공정인사 지침은 “업무능력의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업무명령 위반, 비위행위 등”이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고 위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이 지침을 실제로 해고에 활용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한 후 직무역량 향상교육(PIP)에 배치하고, 성과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보내는 식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저성과자 해고자 1호’로 불렸던 배윤철씨(55)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배씨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거부한 뒤 저성과자가 됐고 PIP를 받았다. 회사는 사무직이던 그를 생산관리부에 배치하더니 직무평가에서 꼴찌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KT, LG전자 등 대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PIP를 운영해왔으나 실제 업무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후감 쓰기, 면접 바로 알기같은 교육을 시켜 당사자들에게 모멸감을 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거기에 공정인사 지침까지 만들어지면서 이 교육은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이 돼버렸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최근 한 대기업 근로자가 PIP에 배치된 뒤 낸 구제신청에 대해 “PIP는 근로기준법의 해고 제한규정을 회피할 방법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못박았다. MBC도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기자와 PD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 PIP로 보냈다.

양대 지침 중 두번째인 취업규칙 지침은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노동조건을 만들려면 기업들이 노조 혹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대폭 완화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측이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이 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밀어붙였던 성과연봉제 확대의 발판이 됐다. 새 정부 들어 원상복귀 되긴 했지만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방안은 간부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일반 직원으로 확대하고, 성과급 격차도 더 벌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공공기관·공기업 노조와 노동자들은 반발했지만 당국은 보수와 예산의 불이익을 위협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특히 금융권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사활을 걸었고,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성과연봉제(보수규칙 변경) 동의서’ 작성을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조사에 따르면 금융기관들은 성과연봉제 동의서를 받기 위해 부서별로 인원수를 할당하거나 직원들의 동의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도 노동자들의 ‘강제 동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기관들은 취업규칙 지침을 활용했다. 지난해 119개 공기업·준정부기관 가운데 노사 합의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한 기관은 48곳에 이른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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