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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7m 옆 발레단 들어가기까지 꼬박 3년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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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로열발레단 첫 한국인 발레리노 전준혁

동아일보

로열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프레더릭 애슈턴(1904∼1988)의 이름을 딴 ‘애슈턴 스튜디오’에서 전준혁은 “유명 감독들이 안무한 로열발레단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런던=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영국 런던 중심지인 코벤트가든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세계 최고 발레단 중 하나인 로열발레단은 로열오페라하우스 상주 단체다. 발레단 단원들이 이용하는 출입구와 로열발레학교 출입구는 1차선인 플로럴 스트리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불과 7∼8m에 불과하지만 발레학교 출입구에서 발레단 출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3년이나 걸렸어요.” 16일 로열오페라하우스 5층 발레단 로비에서 로열발레단 발레리노 전준혁(19)을 만났다. 그는 2003년 입단한 재일교포 4세 발레리나 최유희(33·한국 국적) 이후 두 번째 한국인 로열발레단 단원이다. 한국인 발레리노로는 최초다. 이날은 그가 발레단에 입단한 지 꼭 한 달 되는 날이었다. “로열발레단에 입단한 뒤에도 습관이 돼서 그런지 3년 전 입학했던 발레학교 출입구로 갈 때가 많아요. ‘아차! 나 이제 학생이 아니라 단원이지’ 한답니다.”

그는 2014년 3월 로열발레학교에서 동양인 최초로 전액 장학생에 선발됐다. 매년 로열발레학교 출신 무용수 30여 명 중 2, 3명만이 로열발레단에 입단한다. 어려운 관문을 뚫은 그는 발레단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연습실, 식당, 분장실 등 발레단 이곳저곳을 소개시켜 줬다. 카페테리아에서 한 직원이 그를 보고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로열발레단은 앞으로 4년간의 공연, 리허설 등의 일정이 모두 짜여 있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돼 있어요. 무용수 하나하나도 정상급 실력을 갖췄어요. 전 27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처음으로 출연해요. 여러 명이 추는 군무이지만 많이 떨려요.”

세 살 때 발레를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한국 프로덕션 초연 당시 1대 ‘빌리’로 내정됐다. 하지만 로열발레단 입단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하차했다.

“로열발레학교 입학 전에 영국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봤어요. (선택하지 않은 길이라) 기분이 묘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출연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발레단에 입단하고 보니 이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어요. 점심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 일정이 빡빡해요. 처음이라 그런지 육체적으로 적응하기 힘들어요.”

발레단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의 집을 가 보니 방에는 짐이 채 풀어져 있지도 않았다. 집에선 잠자기 바쁘고, 주말에도 발레단에 나와 연습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이형이 로열오페라하우스 공연으로 런던에 왔어요.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저에게 ‘욕심내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줬어요. 수석무용수가 되고 싶지만 그 전에 어떤 배역을 맡든 좋은 무용수가 되는 것이 먼저죠.”

로열발레단 단원에게는 평생에 딱 한 번 공짜 티켓이 2장 나온다. 주역 데뷔 공연 때다. “그 티켓은 꼭 받아보고 싶어요. 당연히 부모님께 드려야죠. 그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런던=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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