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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MBC 몰락 10년사] ⑫MBC 부역자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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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는 나날이 줄어들었지만 간부들의 법인카드 한도는 크게 늘어났다. 철마다 간부들에게 ‘아이패드’, ‘갤럭시기어’ 등 달콤한 선물과 국내 리조트, 제주도, 해외로 이어지는 외유성 연수가 주어졌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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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망쳤다는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의 사람들은 전부 MBC 출신이잖아. 그런 그들이 왜 그랬을까?” 주위 사람들이 많이 묻는 내용이고, 많은 MBC 구성원들도 의아해 마지않는 질문이다. 국정원 개혁위가 밝혔듯이 이명박 정부는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MBC를 장악하려 했는데, 내부 협력자가 굉장히 필요했다. MBC는 1987년 만들어진 노동조합이 강고했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도 노동조합의 일원이었고 김종국 사장은 심지어 1990년대 말 노조위원장이었다. ‘근거없이 최승호·박성제를 해고했다’고 밝힌 백종문 현 부사장은 노동조합 부위원장 출신이었다. 그런 MBC에서 어떻게 많은 이들이 권력의 끄나풀이 되어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았을까. 부역에 대한 보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윤길용 PD는 <PD수첩> PD 출신으로 종교문제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현역 PD 시절이었던 1999년,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의 비리를 다룬 ‘목자님, 목자님, 우리 목자님’ 방영 도중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MBC 주조종실에 난입해 송출이 중단돼 ‘얼룩말 그림’이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저녁 교양프로그램 CP(책임프로듀서) 시절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다룬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죽음’과 같은 아이템을 주저없이 컨펌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런 시각은 MBC에서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는 CP, 부장의 자리에 잠시 있었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장’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MB 정부가 들어서자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의 고대 인맥을 탔다는 소문이 돌았고, 2011년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시사교양국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국정원의 ‘지시’가 확실한 ‘최승호 축출’과 ‘PD수첩 망치기’에 직접 나섰다. PD들은 즉각 반발했고 총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승호 PD도 이제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더니 뜬금없이 “이제 회사 방침을 잘 따라서 교양PD도 지역 MBC 사장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행위가 이런 욕망에 기인한다는 것을 실토했다. 젊은 PD들은 경악했다.

MBC 부패와 부역의 젖줄, 지역사 사장

MBC 본사는 18개 지역 MBC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지만, MBC 대주주는 공적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이고, MBC 사장은 국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MBC 사장이 자기의 충복들을 지역 MBC 사장으로 마음대로 뽑는다는 것은 사실상 국민의 재산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수천 명의 MBC 직원들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고, 그저 운이 좋고 연줄을 잡아서 ‘월급 사장’에 올랐지만 마치 오너 사장들처럼 지역사 사장의 자리를 부역자들에게 논공행상하듯이 임명했다.

PD수첩과 시사교양국을 ‘망친’ 윤길용·김철진·김현종 등이 지역사 사장에 임명되었다. 뉴스와 <시사매거진 2580> 등을 ‘엉망으로 만든’ 이진숙·송재우·심원택 등도 어김없이 지역 MBC 사장으로 영전했다. 지역 MBC 사원들의 봉급은 수년째 사실상 동결됐고 5년 넘게 신입사원을 뽑지 못한 지역이 수두룩한데 사장들의 연봉은 8%가 넘게 올랐다. 최소한의 도덕도 상실한 것이다. 2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과 달마다 300만원 정도의 판공비가 제공된다. 관용차와 운전기사, 사택이 딸려 나온다. 지역 MBC 사장들에게 들어가는 예산만 연간 3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직원이 100여명 남짓한 지역 MBC에서 사장들은 마치 수조 원대 공기업 사장처럼 행세한다는데, 이 거짓말 같은 비효율을 고스란히 떠안는 건 지역 MBC 구성원들이었다.

수억 원이 넘는 이득은 달콤했다. 정년을 앞둔 국장급들이 수십 년간 함께한 동료들과 스스로의 명예를 버리고 이 인센티브를 위해 부역을 서슴지 않았다. PD수첩을 망친 윤길용 전 시사교양국장은 결국 울산 MBC 사장이 되었고, 3년 임기를 마치고 지역 MBC의 프로그램 유통을 총괄하는 MBC NET 사장에 또다시 임명되었다. 그는 울산 MBC 사장 시절 안광한 MBC 사장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에게 공금으로 고가의 선물을 한 것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것이 매관매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콤한 인센티브와 암울한 정치전망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범죄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범죄는 정신병리학이나 이상행동 증후군이 아니라 처벌받을 가능성이 적고, 행위의 효용이 크다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데 기꺼이 동참한 ‘부역’도 마찬가지 해석이 가능할까.

MBC에는 상향평가제도가 존재했다. 학생들이 교수 강의 평가를 하듯이 직원들이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을 평가했다. 간부들의 전횡을 막고, 또 간부들의 직원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귀한 인사평가제도였다. 상향평가가 있는 한 오직 위에만 충성하는 ‘부역’은 쉽지 않았다. MBC 경영진은 2013년 이 상향평가를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간부들은 이제 위만 바라보면 되었다. 그리고 회사는 간부들에 대한 연봉제를 도입했다. 같은 호봉의 평직원에 비해 평균 약 1300만원 정도 연봉이 인상되었다. 제작비는 나날이 줄어들었지만 간부들의 법인카드 한도는 크게 늘어났다. 철마다 간부들에게 ‘아이패드’, ‘갤럭시기어’ 등 달콤한 선물과 국내 리조트, 제주도, 해외로 이어지는 외유성 연수가 주어졌다. 보직을 맡으면 임금피크도 면제해줬다.

젊은 간부들의 눈에도 분열된 민주세력의 지지부진과 보수정부 30년 집권설이 눈에 아른거렸다. 2016년 총선 새누리당 압승과 보수대연합의 탄생이 예상되었다. 젊은 부장들의 부역행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했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검열했다. 후배들에게 회사의 입장을 따르지 않으면 전출될 것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소극적으로 경영진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는데, 자신들의 행위가 결코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젊은 부역자들이 점령한 <MBC 뉴스데스크>는 최순실 태블릿 PC가 밝혀지고, 박근혜 탄핵과 구속이 일어나는 과정에서도 태블릿 PC의 정체를 트집 잡거나 태극기 집회를 과장하는 비상식을 어김없이 보여주었고, 최근까지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조건 까라’는 식의 사유화된 뉴스를 생산해냈다. 그들은 김장겸 체제의 행동대장이 되어 보수야당과 거래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은 정치적으로 암울했고 ‘쉬운 해고’를 운운하는 권력은 무서웠다. PD, 기자, 아나운서라는 천직을 잃고 쫓겨나고도 노동조합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해(interest)가 존재할 수는 없었다. 끝내 원칙을 지키다가 스케이트장, 송출실, 임무를 알 수 없는 사업부서 등지에서 자신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불안했지만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망망대해에서 노동조합이라는 작은 배를 타고 파도를 넘었고, 천신만고 끝에 언론자유를 회복할 소중한 기회의 땅에 도착했다. MBC는 그들에 의해 다시 세워질 것이다.

<김재영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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