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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학교 폭력 없애려면 아이들에게 식물을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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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식물 정신'으로 교실에서 폭력 몰아낸 교사, 스티븐 리츠
실내에 ‘그린 월’ 세우고 ‘먹는 교실' 만들어… 자기만의 토마토, 허브, 딸기로 요리
부모들도 채소 수확하러 교실 찾아… 교실 농장은 학교와 부모를 연결
교내 폭력 절반으로 줄고, 졸업률 17%에서 100%로… 문제아들 지역 사회에 모범 시민으로 정착

조선비즈

녹색 교실 ‘그린 브롱크스 머신’의 설립자 스티븐 리츠(Stephen Ritz).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선거구로 꼽히는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교사로 일하며 ‘녹색 교실'을 주도했다./사진=스티븐 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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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피투성이 중학생' 등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약자를 향한 십대들의 폭력은 도를 넘어섰고, 어른들은 혀를 차고 있지만, 뉴스는 ‘타자의 일’로 선정적으로 소비될 뿐이다.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아이들에게 교실과 학교 나아가 사회라는 생태계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메시지가 대한민국 교실을 지배하는 지금, ‘돌봄의 식물 정신'으로 교실에서 폭력을 몰아낸 교사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볼 만하다. 피리 부는 콩 사나이, 초록 손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미국인 고등학교 교사 스티븐 리츠. 그는 마약과 폭력에 찌든 가난한 슬럼가 아이들에게 꽃과 채소를 기르게 했고 놀라운 변화를 끌어냈다.

무장경비원의 금속탐지기를 통과해 등교했던 폭력 학생들은 총 대신 물뿌리개를 들었다. 출석률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17%만 받던 졸업장을 모두가 받았고, 학교에서 교도소로 직행하던 문제아들은 유기농 식품 매장인 홀푸드에 취직하는 등 어엿한 시민으로 성장했다. 뉴욕의 소말리아라고 불리던 사우스 브롱크스에 녹색 지대가 생겼다.

그는 그 과정을 ‘그린 브롱크스 머신’이라는 교과 과정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확산시켰다. 이 놀라운 기적이 테드 강연(테드 사상 최초로 두 번 기립 박수를 받았으며 조회 수 100만 회가 넘었다)과 다큐멘터리로 생중계 되자, 미국 전역에서는 녹색 교육 돌풍이 일어났다. 스티븐 리츠는 NPR 방송국 선정 위대한 교사 50인, 교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교사상 최종 10인 등에 선정되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 싱싱한 생명력이 넘치는 ‘식물 전도사'의 저자인 ‘리츠 샘(아이들이 스티브 리츠를 부르는 애칭)을 수차례에 걸친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최근 출간된 ‘식물의 힘'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교육 하는가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스티븐 리츠는 유대계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빈곤 지역인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스물 한 살에 고향의 한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대부분의 아이가 쥐와 바퀴벌레가 들끓는 공영주택에 살며 희망 없는 오늘을 보내던 어느 날, 이 엉망진창 교실에 수선화가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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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는 캐나다, 두바이, 카이로,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의 지역 사회를 돌며 ‘식물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사진=스티븐 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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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가 꽃을 피웠던 그 날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

“2004년 가을이었다. 그날도 수업 중 패싸움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하려는 찰나, 한 남학생이 라디에이터 밑에서 무언가를 홱 잡아 뜯자 꽃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수선화였다. 아이들은 마치 마술 모자에서 토끼가 튀어나온 양 탄성을 내질렀다. 남학생들은 야단법석을 떨며 여학생들에게 꽃을 건넸고 여학생들은 한두 줄기를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어 했다.”

식물 교실이 탄생하던 이 순간을, 리츠는 ‘우주적 경험’이라고 했다.

“정말 불가사의했다.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보다 그 순간을 학생들과 상호 작용할 기회로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게 더 기쁘다. 식물은 아이들과 나를 연결했다. ‘수선화 사건'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우스 브롱크스 아이들은 나를 “아빠, 혹은 식물 대부님"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식물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와 비슷하다. 두다멜이 빈민가 청소년에게 악기를 가르쳐서 교화시킨 것처럼, 당신은 식물 재배를 가르친 셈이다.

“식물이 자라는 걸 본 적이 있나. 그건 일요일 아침,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는 것과 같다. 작은 씨앗을 볼 때는 더 놀랍다. 씨앗은 아이들과 비슷하다. 작고 볼품없지만, 어느 순간 유전자의 비밀이 풀리면 황홀한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가 천직인듯싶지만, 스티븐 리츠는 자신이 실수로 교사가 됐다고 했다. 그는 농구 선수를 꿈꿨지만, 부상을 당한 뒤, 어머니의 권유로 임시 교사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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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재배하자 아이들의 공격성은 놀라울 정도로 잦아들었다. 학습 능력도 높아졌고 무엇보다 채소를 먹고 건강해졌다.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을 다룬 스티븐 리츠의 책 ‘식물의 힘(여문책)’.




-학교에 부임했던 첫날을 기억하나?

“학교에 처음 면접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 더 이상 떨어질 데라곤 없는 학교였다(웃음). “행운을 빌어요!” 교감은 어깨너머로 소리치고 도망쳐 버렸다. 내가 어떤 상황 속에서 던져질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내 나이,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어떤 상황이 펼쳐졌나?

“처음 출근했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학생도 있었다. 내가 막 성년에 접어든 그때 우리 반 학생들은 공공교육을 마쳐야 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공립학교 체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부모나 조부모가 자신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복지수당을 받기 위해서라는 걸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출석 일수를 채우는 식이었다.”

-브롱크스 아이들의 생활은 어느 정도로 비참했나?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 소녀의 어머니는 급전이 필요해서 딸의 옷가지와 여성 위생용품을 팔아버렸다. 또 다른 소녀는 방과 후 집에 가보니 화재로 아파트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그다음 주가 되면, 마약을 팔아 BMW를 몰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매일 통학 길엔 감춘 무기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장경비원의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동료 교사들은 어땠나?

“대부분은 나이가 많고 지쳐 있었으며, 일과가 끝나자마자 퇴근하는데 열심이었다(웃음). 반면 나는 젊고 겁이 없었으며, 브롱크스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는 “브롱크스는 내게 완벽한 맞춤옷 같았다”고 했다. 그의 모토는 이것이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계속 나아가라.’

-벼랑 끝에 선 ‘문제아들'과 어떻게 교감했나?

“사람은 누구나 소속감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를 환영해야 한다. 환영의 방식이 바로 공통점을 나누는 것이다. 틈틈이 내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아버지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이스라엘을 거쳐 뉴욕으로 왔다. 내가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라는 걸 알고, 아이들은 무척 흥미로워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 점을 수업의 출발점으로 활용했다.”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말썽을 피울 땐 교사도 난감하지 않은가?

“식물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식물을 탓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려고 한다. 식물에 쏟는 그런 정성을 우리 아이들도 받을 가치가 있다. 아무리 거칠고 세상 물정을 다 아는 것처럼 보여도, 몸집만 어른이지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범죄 전과가 있는 아이들도 내가 이야기를 읽어줄 때는 유치원생처럼 반응했다. 아이들은 마른 스펀지처럼 사랑과 긍정적인 관심을 빨아들인다. 아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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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가든에서 탁자로. 채소를 따서 이동식 주방에서 요리를 해먹는 아이들. 같이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협업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사진=스티븐 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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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이 있나?

“나는 모든 아이를 기억한다. 출석표나 성적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그들 모두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들의 부모님과 성격, 가정환경, 취미까지. 개인의 뿌리와 깊이 닿은 내 기억력이 내 성공의 뿌리가 됐다.

버네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버네사는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교사들에게도 싸움을 걸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선생님이 뭘 알아요? 히스패닉의 삶에 대해 손톱만큼도 모르면서 봉급 받으려고 여기 있잖아요”라고 소리치면서. 나는 그녀에게 내 샌드위치 반쪽을 나눠주면서 말했다. “그런데, 너도 나를 몰라. 우리 서로 노력하자. 우린 일시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계잖니.”

그 뒤 그 아이는 내가 놓쳤던 교실의 드라마를 들려주었고 거리의 힙합 문화를 알려줬다. 나는 버네사를 데리고 약물치료 센터를 방문했다. 나중에 버네사는 내게 보답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보살피는 관계’야말로 배움의 가장 강력한 토대라고 생각했다. 그 매개가 식물이었다.

-앞서 말한 ‘수선화 사건'이 채소를 재배한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나?

“더 구체적인 계기는 굶주림이었다. 아이들 뱃속에서는 늘 꼬르륵 소리가 났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대화 중에 한 학생이 자신의 할머니가 식탁 한가운데 아보카도 화분을 키운다는 말에서 옥상 정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리는 함께 홀푸드 매장을 방문했고, 거기서 컬러풀한 과일을 보고 완전히 넋을 잃었다. 옥상에 사철 딸기, 블루베리, 토마토를 심었고, 어느 날 수십 마리의 나비가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저걸 해냈다"고 소리쳤다. 성취감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식물을 기르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불과 며칠 사이 아이들에게서 사나운 태도가 사라졌다. 일일 출석률이 40%에서 90%로 높아졌고 징계문제가 줄어들었으며, 학업성적이 올라가고 건강이 좋아졌다. 자신이 거둔 수확을 남들과 나눈다는 헤아릴 수 없는 기쁨까지 맛보았다. 그간 학생들과 그동안 수확한 채소가 23톤에 이른다. 내 체중도 45㎏ 넘게 줄었으며, 옛날에 안 먹던 루꼴라와 가지도 먹는다(웃음).”

스티브 리츠는 녹색 교실이 가능했던 것은 획기적인 재배 시스템인 ‘그린 월' 덕분이었다고 했다. 벽 전체를 식물 재배 공간으로 활용하는 정원용 ‘그린 월’을 교실에 들여놓자 교실에서 바로 따서 요리도 할 수 있었다. 부모들도 싱싱한 채소를 따려고 교실로 찾아왔다.

그는 “채소는 단지 노력의 열매가 아니라 과학, 수학, 문예, 사업 등을 가르치는 학습의 도구가 됐다”고 회고했다. “가령 아이들은 칫솔로 꽃가루를 나르면서 “식물들을 섹스시키고 있어요"라고 했다. 모종을 돌보는 일은 가장 발달이 늦은 몇몇 아이가 책임을 맡았다. 덕분에 서로를 향한 공격성은 사라지고 포용력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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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와 그의 가족은 브롱크스에 살면서 지금도 1년 내내 농사를 짓고 있다./사진=스티븐 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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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은 없었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교실이 물과 흙 때문에 더렵혀지기도 했다. 양수기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는 고집이 세고, 인내력이 있고 협업을 좋아한다(웃음). 문제에 봉착할 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좀 도와줄 수 있겠니?” 우리는 고대 수송로에서 중력을 이용해 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전기료를 줄였다. 이 설계안으로 농업 박람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엔 ‘자식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있다. 당신의 식물 프로젝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잠재력 가득한 씨앗이다. 식물과 똑같이 사랑, 신선한 공기, 햇빛 그리고 물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농부가 될 필요가 있다. 기르는 생명체를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욕구를 살피면서.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모든 연약한 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아이들과 채소를 기를 때 나는 ‘아기 돌보듯 돌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요즘 학교 폭력 등 많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나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부모와 조부모가 이웃과 관계 맺는 법을 보며 상호작용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듯하다. 온통 물질에 대한 집착, 물건에 대한 사랑뿐이지 않나. 부모들은 아이들의 시험성적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지식을 입력시키겠다’는 ‘교육관'이 이제 무슨 소용인가. 선생은 앞장서 가르치기보다 그저 인내심 있게 격려할 뿐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스스로 순화되고 진화해간다.”

-교육자로서 당신의 목표는?

“교실을 최대한 지역 사회로 침투시키고, 세상을 교실 안으로 데려오는 것.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싶다.”

-식물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대한민국의 교사와 아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비결은 없다. 실패는 데이터다. 많은 식물을 죽인 후에야 깨달을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듯 식물에도 인내심, 일관성 그리고 구조화가 필요하다는 걸.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식물을 기르는 것 같지만, 사실 식물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 아직도 아이들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저 뿌리를 잘못 건드리면 식물이 죽는다고요? 저게 사느냐 마느냐는 우리한테 달렸네요.” 연약한 모종들은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친다. 작게 시작하고 큰 꿈을 꾸며 자주 축하해주어라. 상추, 토마토, 비트가 들어간 삶의 서사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스티븐 리츠는 한국의 K팝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K팝과 식물 프로젝트가 결합하면 더 영향력 있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피력하며. ‘학교 폭력'으로 부모도 교사도 아이도 점점 히스테리컬해져 가는 한국의 교실에 ‘수선화의 기적’이 일어날 일은 요원한 걸까. 메마른 반성문과 경위서 대신 싱싱한 토마토와 산딸기 모종이 자라는 교실을 그려본다.

김지수 기자(kimjis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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