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반공·종북에 기댄 보수… 이대로는 희망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 보수 정당·북핵·노동 문제 등 이슈들 / ‘진보 논객’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단 / 보수, 관료·재벌·영남 연결된 구체제 청산 / 스스로의 정당성으로 서야 기회 찾아와 / ‘악화일로' 한반도 문제도 전향적 사고 주문 / 평화의 안정적 관리로 대북정책 전환 강조

세계일보

최장집 지음/후마니타스/1만3000원


정치의 공간/최장집 지음/후마니타스/1만3000원


“한마디로 좋은 시절은 끝났다.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둘러싼 이념과 가치, 비전으로 다투는 자유경쟁의 시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 논객으로 이름을 알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국 보수정당의 생명력이 다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는 신간 ‘정치의 공간’을 출간해 보수 정당과 북핵, 노동 문제 이슈에 대한 최근 견해를 밝혔다.

세계일보

진보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책에서 “지금의 보수정당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면서 건전한 보수정당의 탄생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 명예교수는 먼저 한국 정당들의 오른쪽 한계선에 대해 지적한다. “냉전 반공주의와 노동 배제를 앞세운 보수가 아닌, 민주주의 가치와 병행하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가 주축 정당이 될 수 있는 길은 과연 있을까?” 아직 민주적이고 합리적 보수 정당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보수냐에 있다”고 했다. 2017년 5월 대선을 전후한 여러 상황들을 볼 때 지금 같은 보수(정당들)는 집권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보수가 반공과 종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정당성으로 서야 한다”면서, “개혁 보수를 내세운 바른정당에게 과연 기회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 명예교수는 “상대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만을 바라보고, 성장 만능주의와 냉전 반공주의를 고집하고, 관료-재벌-영남으로 연결된 구체제 복원을 꾀한다면 소멸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한다.

문재인정부의 성공 요건도 제시했다. 청와대 수석실이 축소 내지 폐지되어야 입법, 행정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 경시 풍조를 꼽는다. 최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 6명의 대통령이 청와대를 거쳐갔지만 누구도 국회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면서 “내각과 의회, 정당을 무시해 온 관행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려는 욕구를 갖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형적 사례라면서,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발상”은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 명예교수는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전향적인 사고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세계일보

보수 재건의 결의를 다지는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


세계일보

김무성, 유승민 등을 비롯한 바른정당 의원들.


현재 한국은 전쟁의 위협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앞선 독일의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한국이 독립적인 플레이어(운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 명예교수는 “군사적 옵션이나 안보를 대북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면 선택의 여지는 지극히 협소해질 것”이라면서, “이런 상태는 우리를 너무나 부정적, 소극적으로 축소시킬 것이며 대한민국은 퇴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코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익숙한 방식, 즉 북한을 고립시키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대북 정책 내지 통일 정책은 안 된다”면서 “평화의 안정적 관리를 목표로 하는 대북 정책, 남북한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느 정당도 이런 이치를 주장하지 않는, 꿀 먹은 벙어리들이라고 한탄한다. 그는 “6·25전쟁으로 200만명이 사망한 비극을 겪었으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면서 “이를 깨달았다면 민족주의보다는 평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최 명예교수는 “독일 통일은 유럽연합(EU)이라는 초국가적 틀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북핵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제시한 것”이라면서, “평화 지향적 대북 정책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합의, 한·미 간 공조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 명예교수는 앞으로 노동 문제 개혁에 천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관점과 양립할 수 있는 노동관 혹은 노사 관계는 어떤 것이냐가 중요하다”면서 노사정위원회와 더불어 독일 모델 또는 코포라티즘(협동주의, 대타협)을 제시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코포라티즘 이론을 국내에 처음 적용해 노동문제 해결을 분석한 바 있다.

최 명예교수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 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는 노동 문제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노동 문제가 달라지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없다”고 단언했다. 최 명예교수는 “2013년 대선 이래 최근 대선에 이르기까지 ‘경제민주화’라는 이슈가 중심에 있었다”면서, “그러나 재벌 개혁이 주로 이야기될 뿐 노사 관계의 개혁은 포함되지도 논의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노동 문제의 개혁 없이, 재벌의 소유권과 경영권 제한 등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만으로 국가-재벌 유착관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진보 논객인 최 명예교수가 보수정당의 생존법을 지적한 것은 이례적이다. 저자는 그만큼 현재 한국 보수정당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