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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말로만 노인보호… 유명무실 '실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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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신호등도 없고…과속턱 없어 시속 60km '쌩쌩'/표지판만 덩그러니… 제 기능 못해

세계일보

서울 관악구의 한 노인종합복지관 앞 왕복 4차로 도로는 노인 보행자 보호를 위해 지정한 ‘실버존’이다.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시속 30㎞를 넘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을 지키는 운전자는 없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쯤 기자가 이곳의 실버존을 지나가는 차량 10대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평균 시속 62km로, 제한속도(시속 30km)의 2배가 넘었다. 과속방지턱이 없어 운전자들은 속도를 줄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서울시내 도로의 상당수 실버존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실버존에서 노인 교통사고가 늘고 있지만 속도제한 규정 등을 준수하는 운전자들은 거의 없다.

22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는 2012년 1만5190건에서 지난해 2만4429건으로 5년 새 60.8% 증가했다. 사망자도 늘면서 2012년 718명에서 2015년에는 최대 규모인 815명에 달했다.

세계일보

노인 교통사고가 이처럼 크게 늘고 있지만 전국에 설치된 실버존은 7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경찰과 도로교통공단은 노인 통행인구를 감안해 전국에 7157곳의 실버존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보호대상이 어린이인 스쿨존(1만6355곳)과 비교해도 턱없이 적다.

실버존이 이같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제도의 홍보, 안내 부족 문제가 우선 꼽힌다. 즉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실버존 자체를 모른다는 거다.

세계일보

이날 실버존에서 만난 택시기사 장모(51)씨는 “택시를 운전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실버존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실버존에 단속카메라가 없으니 속도위반으로 걸리지 않았고, 내비게이션에도 실버존을 알리는 경고음이 없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의 이기적인 반발도 문제다. 노인복지시설 책임자가 지자체에 요청하면 실버존을 지정할 수 있지만 상당수 주민들이 지역 이미지가 노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반발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는 “재정 상황에 따라 실버존 표지판 수나 홍보에서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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