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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추적]교육부 “인하해야” 사립대 “교육 부실해져”…갈 길 먼 입학금 인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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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들, 정부의 입학금 인하 요구에 골머리

교육부 “천차만별 입학금, 학생에 큰 부담”

“대학별로 입학금 사용 내역 조사 중”

사립대들 “수십년째 사실상 등록금 일부”

“낮추면 교육 부실해지고 국제경쟁력 약해져”

교육부 “OECD 회원국 중 한국 등록금 비싸”

사립대 “외국은 등록금 외에 기부금 등 많아”

“인하 요구, 반대도, 수용도 어려워 막막할 뿐”

중앙일보

국공립대가 내년부터 입학금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이후 사립대 입학금 폐지에 대한 정부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열렸다. 참가자 중 다수는 입학금 인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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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요구로 등록금이 8년째 동결된 상황이다. 여기에서 입학금마저 줄이면 대학 재정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쓸 수 있는 돈이 줄면 그만큼 대학 교육이 부실해질 텐데 누가 책임질 것이냐”(서울 A사립대 기획처장)


“입학금을 줄이면 그만큼 정부가 지원을 늘려줘야 하는데 새 정부의 대학 지원은 국립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사립대들은 한숨만 나온다.”(서울 B사립대 기획처장)


대학 입학금 인하 논의가 사립대로도 이어진 가운데, 전국 사립대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입학금 인하는 불가라며 정면으로 거절하기도 어렵고, 정부 요구대로 인하하면 이를 보충할 대안이 없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학 입학금 폐지를 공약했고,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다. 교육부는 당장 내년 입학금부터 인하를 추진하겠다며 최근 사립대 10곳이 포함된 ‘입학금 제도 개선 협의회’도 구성했다. 입학금 인하 여부가 아니라 사실상 인하 폭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게 대학가의 설명이다.

지난 15일 열린 첫 회의에서 교육부는 “입학금 인하에 따른 대책으로 대학에 대한 일반 재정지원을 늘리고, 입학금을 낮추는 대학엔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확대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국가장학금 Ⅱ유형은 정부와 대학이 매칭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학생을 지원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장기적으로 학생이 줄어 건물 등 교육용 기본재산이 남게 되면 이를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며 대학을 설득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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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참여연대·반값등록금국민본부 회원들이 지난 8일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가 열리는 여의도 켄싱턴호텔 앞에서 입학금 폐지와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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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내세우는 입학금 인하 논리는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사립대가 평균 8554달러, 국공립대가 평균 4773달러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사립대 2만1189달러, 국공립대 8202달러)에 이어 2위다.

입학금 인하 카드가 먼저 나온 것은 대학별로 차이가 많이 나는 데다 수년 전부터 총학생회 등에서 폐지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현재 사립대의 입학금은 평균 67만8000원으로 국공립대(14만3000원)의 5배에 이른다. 동국대(102만4000원)·한국외대(99만8000원)·고려대(99만6600원) 등 일부 사립대는 100만원에 가깝다.

교육부는 “입학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사용 실태를 조사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입학에 드는 비용을 파악해 입학과 무관하게 쓰이는 부분을 인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교육부 구상이다. 신미경 교육부 대학장학과장은 “현재 100여 대학의 입학금 사용 내역을 받아서 들여다보고 있다. 이르면 11월까지는 입학금 감축 계획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 발 더 나아가 대학이 입학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관련 법규(고등교육법)에서 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행 고등교육법에선 “대학이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학들은 입학금은 ‘그 밖의 납부금’ 명목으로 받아왔다. 교육부는 이 조항에 ‘입학금’ 명목의 돈을 학생들에게 받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문구를 추가할 계획이다.

문제는 사립대들이 수십년 째 입학금을 입학 절차에 쓰는 돈으로 한정하지 않고 대학 살림 전반을 꾸리는 재원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교육부 신 과장도 “대부분 대학이 입학금을 등록금과 함께 교비회계에 넣어 집행해왔기 때문에 입학금만 따로 떼어 어디에 쓰였는지를 분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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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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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이 선뜻 입학금을 인하하겠다고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립대들은 입학금 인하를 ’교육의 질 저하 우려’와 연결짓고 있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입학금이 줄면 등록금을 현재보다 낮추는 결과가 된다. 그러면 학교 시설 운영비, 교직원 인건비 등도 줄여야 한다.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사립대들은 “등록금이 OECD 회원국에 비해 비싼 것은 반쪽의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OECD 국가는 사립대 비중이 한국처럼 높지 않다. 게다가 사립대 수입 중에서 기부금과 정부지원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이에 반해 한국의 사립대는 입학금·등록금이 사실상 학교 수입의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립대들은 교육부에 적극 반기를 들지 못한다. ”다른 대학이 먼저 나서 우리 사립대들 입장을 정부에 속시원히 밝혀줬으면 좋겠다”며 서로 쳐다보는 분위기다. 정부의 입학금 인하 드라이브가 못마땅하지만 먼저 나서서 정부에 목소리를 내기 곤란해 하는 것이다.

적극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교육부에 ‘찍히는 것’을 걱정해서다. 교육부는 여러 사업에서 대학들을 심사해 그중 일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정책에 대한 협조 여부도 심사에서 가점 혹은 감점으로 작용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정부의 요구에 따라 수년 째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대학들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새 정부가 대학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재정 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관리’하는 것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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