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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자 수컷 물꿩이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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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 일기

큰 발가락과 화려한 깃털 지닌 ‘물에 사는 꿩’

암컷은 알만 낳고 수컷이 부화와 보육 도맡아



창녕 우포늪에는 열대지역에 주로 사는 물꿩이 2010년부터 해마다 찾아오고 있다. 예전엔 길잃은 새로 드물게 들렀지만 이젠 번식까지 한다. 물꿩의 번식은 1993년 경남 주남저수지를 시작으로 제주와 천수만 등지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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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름 철새가 된 열대지역 물새인 물꿩이 우포늪 가시연 위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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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포늪에서는 지속적인 번식이 이뤄지고 있다. 2011년부터 번식을 시작했고 2013년 7월엔 8마리까지 관찰되었다. 해마다 우포늪을 찾아오는 물꿩이 지난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알 4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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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 찾아온 물꿩의 연도별 개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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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꿩은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품어 부화한 뒤 새끼를 기르는 일처다부제 번식을 한다. 암컷 물꿩이 알을 수컷들에게 나누어 줘 번식력을 높이려는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작년에는 사진인들의 간섭으로 우포늪 내 두 곳의 둥지 가운데 한 곳에서 번식이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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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 지나치게 접근해 촬영하는 사진인들. 이들은 시야를 가린다고 버드나무를 꺾어내기도 했다. 2013년 우포늪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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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물꿩이 알을 품는 모습을 발견했다. 자세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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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에 알을 끼듯이 알을 품는 수컷 물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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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물꿩과 수컷 물꿩은 외모로는 잘 구분이 안 되지만 암컷이 다소 크다.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는 것은 수컷 몫이다. 무더운 날씨 탓에 온도조절을 위하여 수컷 물꿩은 자리를 자주 비운다. 부화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둥지를 비우고 날아가는 방향은 항상 암컷 물꿩이 있는 곳이다. 서로 먼 거리를 두고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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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꿩 둥지 근처에 접근했다가 혼쭐이 나는 청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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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물꿩이 곁을 주지 않아 부부 사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둥지로 돌아올 땐 날다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려앉아 수초 위를 걸어서 오는데, 수초 위에는 이동 동선이 정해져 있어 그 길만 이용한다. 돌아오는 길에 항상 먹이 사냥을 한다. 당황하거나 조급함 없이 주변을 철저하게 살피며 늪 위를 걷는다. 특히 우포의 가시연은 물꿩의 포장도로 구실을 하는 매우 중요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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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로 돌아올 땐 적당한 거리에 내려앉아 걸어 들어오는 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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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꿩은 다른 새들처럼 가슴으로 알을 품지 않고 겨드랑이 사이에 알을 넣어 감싼다. 알은 날개 아랫면 위에 올라가는 점이 특이하다. 알을 품을 때 물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다. 알을 품는 시간은 평균 20여분 정도로 그 이상은 넘지 않았다. 10분 정도 자리를 비우는 일을 하루종일 반복한다. 물꿩은 주변 환경과 기후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다. 부화를 위해 주위 온도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비가 내려 늪지의 수위가 올라가거나 둥지의 변형이나 수초의 환경 등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둥지를 새로 마련해 품던 알을 옮겨 간다. 이때 알을 부리 안쪽으로 굴려 이동시키는데, 알은 물에 빠져도 떠오른다. 가시연, 자라풀 등이 둥지를 만들거나 수선하는데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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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은 알을 품다 수시로 둥지 주변을 날아다닌다. 영역에 대한 애착심이 강해 항상 주변을 순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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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번식기는 무덥고 비가 자주 내렸다. 비가 오면 꼼짝 않고 알을 보호하다가 날이 맑으면 재빨리 햇볕에 노출시킨다. 물 위에서 번식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깃털 손질을 자주하여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 깃털은 알을 품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둥지 주변에서 경계근무를 서면서 방해요인이 있나 살피고 때로는 둥지 주변의 침입자에게 소리를 내 경고한다. 당당한 자세로 다가가 침입자를 쫓거나 수컷에게 알리지만 그다지 미덥지 않게 행동한다. 물꿩은 다리도 길지만 발가락이 긴 것이 특징이다. 긴 발가락은 수초 위를 잘 걸을 수 있게 발달돼 있다. 느리게 걷다가도 본능적으로 깊이 빠지는 곳에서는 수초 위를 스쳐 가듯 매우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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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가 시작됐다. 첫 번째 물꿩 새끼가 몸을 거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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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오전 7시 48분, 4개의 알 중 1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알을 품은 지 27일째다. 34분 뒤인 오전 8시 22분께 새끼가 몸부림치며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 수컷 물꿩은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새끼 곁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찌꺼기는 먹고 알껍데기를 물고 멀리 날아가 버리고 온다. 알에서 풍기는 냄새로 인해 천적에게 둥지와 새끼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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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껍데기를 물고 버리려는 수컷 물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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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40분과 오후 3시 20분에 2번째와 3번째 새끼도 알에서 깨어났다. 첫 번째 태어난 물꿩 새끼는 털이 다 말라 기력을 찾고 아비를 곧잘 따라다닌다. 어린 새끼들이 수초에 걸리면 수초를 눌러 길을 만들어준다. 수컷 혼자 새끼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암컷 물꿩은 모습조차 볼 수 없다. 이제 알 하나만 부화되면 된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알은 부화되지 않았다. 혹시 무정란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오전 8시 27분 마지막 알이 부화했다. 알껍데기를 재빠르게 물고 수컷 물꿩이 내다 버린다. 암컷은 알만 낳고 그 뒤의 모든 일을 수컷이 도맡았다. 헌신 덕분에 무사히 새끼가 태어났다. 성공적인 부화다. 수컷 물꿩의 강한 부성애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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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에 젖은 물꿩 새끼. 솜털이 말라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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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새끼들의 체온이 떨어질까 재빨리 아비는 새끼들을 모아 품는다. 아비가 일어났는데 품던 새끼가 보이질 않는다. 새끼들은 아비 날개 겨드랑이 사이에 있었다. 새끼들이 겨드랑이에서 떨어진다. 아비가 겨드랑이로 알을 품던 습성이 새끼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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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물꿩이 일어서자 겨드랑이 사이에 있는 새끼 물꿩의 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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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먹이를 먹는 시늉을 계속해서 한다. 새끼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는다. 마지막 태어난 새끼는 회색빛을 띤다. 솜털의 물기가 마르고 갈색으로 변하자 기력을 찾아 자유롭게 움직인다. 솜털이 마르는데 2시간이 걸렸다. 2~3일이면 둥지 주변을 서서히 벗어날 것이다.

9월 8일 보름여 만에 물꿩 새끼들은 부쩍 자라났다. 아비 물꿩은 새끼를 돌보느라 야위어 힘들어 보인다. 번식깃에서 겨울 깃으로 변환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꼬리도 하나가 빠져버리고 얼굴 주변의 깃털도 변해간다. 혹시나 하여 암컷 물꿩이 새끼 주변에 나타날까 기대하였지만 암컷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때론 냉정한 모성이 종의 보전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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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기르랴 수척해진 아비 물꿩. 꼬리도 빠지고 번식깃에서 겨울깃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겹쳐 더욱 초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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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꿩과 새끼들은 가시연을 발판삼아 자라풀이 적당히 분포된 곳에서 씨앗과 주위에 서식하는 수서 곤충, 갑각류, 작은 물고기를 사냥한다. 제법 자란 물꿩 새끼들은 제멋대로 아비의 관리 구역을 벗어나기도 해 아비의 마음을 애태운다. 아비 물꿩은 소리를 내 새끼들을 불러들이고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생기면 품속으로 불러들여 체온을 유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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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물꿩을 따라 사냥에 나서는 물꿩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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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끼의 솜털은 체온을 유지시키는 기능이 떨어진다. 수컷 혼자서 알을 품고 처절할 정도로 새끼를 키워내는 헌신과 사랑은 감동이었다. 10월말이면 물꿩은 우포늪을 떠나 남아시아 어디론가 향해 가고 내년을 다시 기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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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물꿩과 새끼 물꿩의 사랑스런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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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꿩은 둥지를 틀 때와 알을 산란하는 시기에 매우 민감하다. 사진인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는 작년에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둥지를 건드려 번식을 포기한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 특히 정숙해야 할 번식장소에서 소음을 내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우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물꿩 관찰과 촬영을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은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주영학 우포지킴이, 조재천 낙동강유역환경청, 정봉채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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