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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국민 4명 중 1명이 1등급… 뻥튀겨진 '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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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의 빚 갚을 능력'을 의미하는 신용등급 부문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1400조원을 넘어 연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개인들의 신용등급은 오히려 좋아져 국민 4명 중 1명이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부여받고 있다. 기업들은 2곳 중 1곳이 '매우 우수'인 AA등급 이상을 받고 있다.

신용등급이 좋을수록 싼 이자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은 가계부채 증가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장차 금리가 인상될 경우 '채무 상환 부담 증가→연체 증가→신용등급 하락'의 연쇄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4명 중 1명이 1등급… 금리 인상 땐 대규모 강등 사태 올 수도

신용평가사인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만 18세 이상 개인신용평가 대상자 4492만명 중 신용등급 1등급을 받은 사람은 1075만명으로 1년 전에 비해 88만명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신용평가 대상자 중 1등급 비율도 22.2%에서 23.9%로 증가했다. '고신용자'로 분류되는 1~3등급 숫자도 지난 1년간 100만명 증가해 2200만명을 넘었다. 국민 2명 중 1명이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뜻이다. 반면 중신용자(4~6등급)와 저신용자(7등급 이하)는 각각 20만~30만명 줄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를 주도하는 것도 고신용자층이다. 전체 대출 중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은 2012년 41.1%에서 올해 1분기 54.4%로 늘었는데, 한국은행은 "30∼40대 고신용등급 차주를 중심으로 전·월세에서 자가로 전환하면서 금융기관 차입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선비즈


이 같은 현상의 중심에는 '저금리'가 자리 잡고 있다. 금리 하락으로 연체율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높아지자 금융기관이 이들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린 것이다. 또 정부가 신용등급 산정 방법을 바꾸고 서민층에 대한 채무 조정 등을 지원하면서 전반적인 신용등급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렇게 올라간 신용등급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가계부채 문제가 덜 심각한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고신용자는 적고 저신용자는 많은 구조다. 미국의 개인신용평가사 피코(FICO)에 따르면 최고 등급인 신용 점수 800점 이상자 비율은 20.7%, 최저 등급인 500점 미만자 비율은 4.7%다. 한국은 최저 등급인 10등급 비율이 0.8%에 불과하다.

특히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면 지금까지의 신용등급 인플레가 오히려 독(毒)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한은은 지난 6월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계 소득 개선이 미흡한 상황에서 향후 대출금리가 상승할 경우 채무 상환 부담 증대로 이어져 연체율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개인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더 높은 가산 금리를 적용받게 돼 채무 상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나이스평가정보 관계자는 "쉽게 올라간 신용등급은 더 쉽게 떨어질 수 있어 가령 카드 대금을 한 번만 연체해도 1등급에서 서너 단계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신용등급 뻥튀기도 여전

기업 신용등급 인플레이션도 여전하다. 2013년 '동양 사태' 이후 '신용등급 뻥튀기' 비판이 거세자 신용평가사들이 2014~2015년 기업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낮췄지만, 전반적인 신용등급은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는 비판이 많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최상급인 AA등급 이상을 매긴 기업 비중은 2007년 말 28.2%에서 지난해 말 50.7%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외국과 국내 신평사의 등급이 극과 극인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롯데쇼핑에 대해 무디스는 위에서 열째이자 투자 부적격 바로 윗단계인 'Baaa3'를 줬지만, 국내 신평사들은 위에서 둘째인 'AA+'를 줬다. 한진해운의 경우 국내 3대 신평사가 일제히 투자 적격 등급인 BBB-를 줬다가 부도 직후 한꺼번에 7단계 이상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기업이 신평사에 돈을 내고 등급 평가를 의뢰하기 때문에 신평사는 기업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며 "신용등급 평가 부실을 막으려면 기업과 평가사의 갑을 관계를 끊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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