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전부서장 회의록 입수
원 전 원장 "손 들 때까지 싸우라"
약점 공략 못한 직원 질책하기도
녹취록에는 원 전 원장이 나 후보가 피부숍 논란으로 낙선한 점을 언급하며 직원들에게 “상대방(박원순 시장)이 손들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2011년 11월 18일 국정원 전부서장 회의 녹취 문건. |
중앙일보가 입수한 2011년 11월 18일자 ‘국정원 전(全) 부서장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회의에서 “나경원 후보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여성 표는 10% 이기고 있었거든, 근데 결과는 7%인가 졌더라고. 진 게 1억 피부숍이에요. 딴 게 아니라. 그리고 부재자 투표(피부숍 보도 나오기 전 실시)에서 이겼는데 1억 피부숍 이후에 왕창 졌잖아요…1억 피부숍 하나 가지고 나가떨어지는데”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의 1억원 피부숍 논란은 2011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6일 앞두고 한 주간지에서 ‘나경원 후보 1억 피부과 이용 의혹’을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나 후보가 연회비 1억원에 이르는 피부과에 다닌다는 의혹이었지만, 경찰 확인 결과 피부 관리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 딸과 함께 9개월간 10차례에 걸쳐 550만 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인 흑색선전으로 남은 사례다.
원 전 원장은 이어 “사실이 아닌 거 가지고도 나가떨어지는데 사실인 것도 싸워서…악착같이 해가지고 그놈이 무너질 때까지 싸우라”고 말했다.
또 “(박 시장이) 살지도 않는 작은할아버지에게 바로 (입적) 해가지고 자기 아버지하고 같은 항렬된 것 아니야? 자기 형의 5촌 당숙이 됐잖아”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1969년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적된 것이 병역법의 ‘부선망독자(父先亡獨子·부친을 일찍 여읜 독자)’ 규정(1967년 개정)을 통해 보충역 처분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2011년 11월 18일 국정원 전부서장 회의 |
원 전 원장은 “이번에 B후보(박 시장)가 여권 후보였다면 학교 문제만 해도 이미 선거에 못나왔을거야, 그치?”라며 박 시장의 서울대 법대 학력위조 의혹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왜 이렇게 열정이 없냐"며 직원들을 질책하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2011년 11월 18일 국정원 전부서장 회의 |
박 시장은 시장 출마에 앞서 출간했던 7권의 저서에서 “서울대 법대 시절 제적을 당했다”고 적어 당시 논란이 됐다. 실제 그는 서울대 사회대를 다니다 제적돼 단국대를 졸업했다.
이 같은 회의가 열린지 6일 후 국정원 심리전단은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 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박 시장이) 야세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면밀한 제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명백한 불ㆍ편법 행태에 대해서는 즉각 대응하되, 여타 편파ㆍ독선적 시정 운영은 박 시장에 대한 불만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될 때까지 자료를 축적, 적기에 터뜨려 제압하는 등 단계적ㆍ전략적 대응”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저명 교수ㆍ논객들을 동원, 언론 사설ㆍ칼럼을 통해 시정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기획 시리즈로 쟁점화, 일반 시민들에 정확한 허상 전달”이라고 쓰여 있다. 이로부터 얼마 후 국정원은 ‘민주당, XX일보의 ‘박원순 죽이기’ 기획취재설에 촉각’이라는 문건을 만들기도 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을 앞서던 나 의원은 이 보도로 인해 박 시장에게 7.2%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보수층에서 ‘차기 여성 지도자’로 승승장구하던 나 의원은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 의원은 2014년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에 도전하며 보궐이 된 지역구(동작을) 재보선에 당선돼 19대 국회에 재입성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좌)과 이명박 전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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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은 박원순 제압 문건의 존재가 알려지자 지난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등 10여 명을 고소ㆍ고발했다. 박 시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 참석해 “박원순 제압 문건과 그 실행은 저와 제 가족뿐 아니라 청년실업자에 대한 제압이었고, 비정규직 노동자 제압, 서울시 공무원을 넘어 서울시민을 향한 제압이었다”며 “권력을 남용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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