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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치 세상읽기] 광야에 선 안철수의 극중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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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헌재소장 후보 떨군 국민의당 대모험

존재감 높였지만 대법원장 반대 이어질까

중앙일보

최상연 논설위원


우리 유권자의 이념 분포는 보수와 진보·중도가 비슷한 규모로 나뉘는 삼분지세(三分之勢)에 가깝다. 안정적이면서도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좋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보수와 진보 간엔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고 중도는 여기에 유연성을 보탠다. 거기에다 최근 여론조사론 중도의 덩치가 꾸준히 커지는 추세다. 촛불 민심을 거치며 40%를 넘나들더니 대선 과정에선 50%까지 급증했다.

그런데도 ‘중도 후보가 정권 잡긴 힘들다’는 불문율은 선거 때마다 어김없었다. 기껏해야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유권자만 삼분돼 있을 뿐 선거는 대체로 양자 대결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선거 땐 좀 더 포용적이고 국민 통합적인 공약으로 중도층 표심을 노리지만 선거만 끝나면 자신의 원래 지지자, 집토끼 중심의 국정 운영으로 선회한다. 중도 유권자 입장에선 배신이다.

이런 현실이 반복되면 중도 정당의 공간이 생길 만도 한데 그게 그렇지 않다. 중도를 내세운 국민의당 지지율은 오랫동안 4% 수준이다. 의석수 6석에 불과한 정의당보다 떨어진다. 안철수 대표는 “끝까지 지켜보다 마지막에 신뢰를 주는 게 중도층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대 선거를 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3-4-3의 진보·중도·보수 구도는 막판엔 4-2-4로 바뀌기 일쑤였다.

현실 정치에서 우리 선거판을 압도하는 건 여전히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위력이다. 영남이 보수, 호남이 진보라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에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당도 호남의 집중 지지를 기반으로 등장한 지역 정당이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만 먹히는 차별성을 가졌다기보다 호남 유권자들이 기존 지지 정당인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어서다.

그러니 국민의당은 호남 관련 사안엔 찬성하고 아니면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제3당을 기치로 창당했지만 정부·여당과 연대하지도 맞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행보였다. 장관 청문회, 추경 처리, 정부조직 개편안, 공무원 증원 문제 등 중요 사안마다 반대와 찬성을 오가다 결국엔 여당에 협조했다. 야당으로부터 ‘민주당 2중대’란 비판을 받았고 여권에선 ‘어차피 없어질 정당’이란 말을 들었다.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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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표가 들고나온 ‘극중주의(極中主義)’는 여기서 벗어나겠다는 거다. 지역이 아닌 정책을 찬성과 반대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말이다. 호남 인사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낙마시킨 게 첫 번째 도전이었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단숨에 3%포인트 상승했다. 물론 작은 수치다. 하지만 대선 패배 이후 첫 오름세다. 안 대표는 일단 밖으로 존재감을 내보이는 데까진 성공했다.

문제는 내부에서 부딪치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혼돈을 정리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거다. 민주당의 아류로 인식되는 순간 실제로 2중대가 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목소리가 물론 있다. 하지만 호남에서 인기 좋은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반대론도 많다. 국민의당에서 ‘김이수 재판관은 올곧은 법조인’이란 뒷북 칭찬 릴레이가 벌어지는 건 물론 호남 여론 때문이다.

국민의당 규모를 생각하면 단독으로 민주당과 한국당이란 두 거대 정당에 맞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안 대표는 “품격 있는 보수까지 포괄하겠다”며 바른정당과 연대할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과 차별성을 만들고 자유한국당을 좀 더 오른쪽으로 밀어내 나름의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른정당의 복잡한 사정이나 안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정치 역량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으로의 중도 통합보다 한국당으로의 보수 통합 힘이 더 강하다고 봐야 한다.

중도 세력을 흔들리지 않는 지지층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더 힘든 과제다. 국민의당보다 의석수가 적은 정의당은 사라질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거기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의 극중주의는 홍준표식 선명 야당이 아니다. 싸우는 야당만으론 일관되고 분명한 지향점을 만들기 어렵다. 맥락 없는 중도주의란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그의 새 정치가 그랬다. 별다른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MB 아바타’란 이미지만 심어준 게 대선 패배 원인이라고 국민의당은 결론지었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둔 9월 19일 정계에 입문했다. 이제 꼭 5년이다. 새 정치는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그의 극중주의가 살아나면 한국 정치엔 다당제 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린다. 그러려면 찬성과 반대엔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극중주의는 그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호남의 역풍을 견뎌야 한다. 당장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을 앞뒀다. 광야의 한복판에서 코드 인사 반대란 명분을 만들어 내야 하는 극중주의다. 하지만 글쎄란 의문도 만드는 극중주의다. 어렵고 복잡한 딜레마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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