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등산객 유해 목격…6·25참전용사 66년만에 가족품으로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등산객 목격 바탕으로 국유단 해당 지역 즉시 조사

유전자 시료 채취 중요성 입증…미수습 유해 12만3000여 위

뉴스1

6·25 참전용사의 유해가 등산객의 목격과 국방부 유해발군단원의 노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국유단 제공)© News1


(서울=뉴스1) 조규희 기자 = 한 등산객의 목격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의 노력으로 66년 만에 6·25 참전용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19일 "1951년 2월 육군 직할 결사유격대 13연대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故(고) 한진홍 일병의 아들 한윤식씨에게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발굴 유품 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2번째이며, 국유단 창설 이후 결사유격대로 참전한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 된 것은 처음이다.

한 일병의 유해는 2016년 11월 8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저항령에서 수습됐으며 만년필, 안경, 구두 주걱이 달린 열쇠고리, 단추, 탄피 등의 유품도 함께 발굴됐다.

1930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한 일병은 1950년 3월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이후 1951년 1월 21살의 나이로 육군 직할부대 결사유격대에 입대했다.

한 일병의 부대는 북한군 후방지역으로 침투하기 위해 강원도 어은산을 향해 이동하던 중 북한군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 정선군과 양양군을 피해 중간지역인 인제군 쪽으로 침투했다.

한 일병은 1951년 2월 15일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야간에 주로 활동하면서 빨치산을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이 19일 경남 합천군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한진홍 일병의 아들 한윤식 씨에게 신원확인 통지서를 전달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2017.9.19/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일병의 유해발굴은 등산객의 목격과 유해발굴에 매진한 국유단원의 관심으로 이뤄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국유단 조사과에서 근무하는 서일권 탐사관의 2016년 10월 탐사 예정 지역이 설악산 저항령 이었다.

서 탐사관은 해당 지역의 날씨와 지형을 지속적으로 검색하던 중 한 등산객이 백두대간 종주 중 저항령 정상부 너덜지대에서 노출된 유해를 목격했다는 개인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서 탐사관은 목격자와 전화통화로 유해의 구체적 위치와 노출 상태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유단은 곧바로 현장탐사를 실시하고 암석 위에 노출된 머리뼈를 확인 후 암석 틈 사이에서 팔뼈와 다리뼈 등을 수습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의 유전사 시료채취 중요성도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한번 입증됐다.

신원확인이 신속하게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故 한진홍 일병의 아들 한윤식씨가 2014년 11월 경남 합천군 보건소에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뒀기 때문이다.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3만9000여명으로 6·25전쟁 이후 미 수습된 유해 13만3000여 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며 6·25전쟁 세대와 유가족의 고령화 및 국토개발에 따른 지형변화 등도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데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며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전사자 분들이 아직도 12만3000여 위나 계신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playingjo@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