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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추적] 엄마 신뢰 잃은 사립유치원 … 정부, 국공립 확대 밀어붙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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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휴업 번복 파장

국공립 확대, 예산 마련이 숙제

사립은 퇴로 없어 휴업 불씨 여전

“사립, 이기적 집단으로 몰기보다

국공립과 공존할 방법 찾아야”

중앙일보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을 열고 국공립 유치원 확대 등을 요구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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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사립 유치원들의 집단 휴업은 면했다. 이날 교육부는 “사립 유치원 중 휴업을 한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추진하면 사립 유치원들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언제든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휴업 여부를 둘러싸고 사립 유치원들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지만 휴업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정부로선 이번 사태로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밀어붙일 명분을 쌓았다. 문 대통령은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 비율을 현재 25% 수준에서 2022년까진 4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휴업 번복 파동은 학부모들에게 사립 유치원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립 유치원 학부모 중에선 국공립에 보내고 싶으나 여의치 않아 사립을 택한 경우가 다수다.

이날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선 여성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 회원 10여 명이 ‘대통령님, 우리도 떼쓰면 되는 겁니까’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유아교육과 보육이라는 국가의 역할을 민간, 즉 시장에 떠넘긴 국가정책의 실패”라는 주장도 쏟아냈다. 사립 유치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다. 이 단체는 지난 6월 발족했다. 장하나(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공립 확대 속에서 사립 유치원 문제가 불씨로 남는 것은 사립 유치원의 기여나 앞길에 대해 시각차가 이처럼 커서다. 저출산 여파로 유치원을 다닐 아동 숫자 자체가 줄고 있다. 사립 유치원들은 저출산에 국공립 확대까지 더해지는 상황을 생존권 문제로 받아들인다. 유치원들이 이번에 휴업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 유치원 원장은 “현재도 국공립 추첨에서 떨어진 애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립 유치원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사립 유치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을 추진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정부에 ▶국공립 유치원 확대 중단 ▶사립 유치원 학부모 지원금 인상 ▶사립 유치원에 대한 지나친 감사 중단 등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사실상 들어줄 수 있는 요구가 별로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새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생 비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관건은 역시 예산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 공약대로라면 국공립 확대에 5년간 3조3900억원이 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교육부는 현재까지 재원 조달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보고에서 “국공립 유치원은 사립 유치원과 상충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국공립 확대가 사립 유치원에 위기가 될 것을 인정하는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사립 유치원 위치 등을 고려해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사립 유치원의 퇴로를 만들어 줄 적극적 의향은 없다는 것을 내비쳤다. 김 부총리는 “사립 유치원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소통하면서 진행하겠다”고만 했다.

현행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사립 유치원은 설립자가 유치원 건물을 가지고 있어야 열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치원 설립자나 원장이 유치원 건물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행 유아교육법에선 사립 유치원이 유치원 이외의 용도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행 법규상으로 퇴로가 막힌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국공립 확대를 추진하면서 사립 유치원의 퇴로를 일부라도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사립 유치원은 정부가 유아교육에 관심이 없을 때부터 유아교육을 담당해 왔다. 그들을 무조건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사립 유치원과 국공립 유치원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희·홍상지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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