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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9년간 블랙리스트…마음의 상처 아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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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1차 대국민 활동보고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공개 증언

지난달 21일부터 조사 신청 진행 25건 접수

"진실 밝히기 위해 작은 제보라도 동참해주길"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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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작성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18일 서울 종로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의 토크쇼에서 “오늘 이 자리가 썩 편치 않다”며 무거운 마음을 털어놨다.

이송희일 감독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원배제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첫 단편영화를 20년 전에 찍었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시기의 절반에 가까운 9년 동안 시기를 블랙리스트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지난 7월 31일 공식 출범 이후 그간의 활동 내용 보고와 함께 문화예술인의 조사 신청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은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9년간 이어진 블랙리스트로 겪은 마음의 상처를 털어놨다.

인디스페이스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영진위의 지원에서 배제돼 블랙리스트로 탄압을 받아온 공간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이명박 정부 초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위탁 운영해온 인디스페이스를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했다. 이에 공모에 나섰는데 심사결과 1위를 했음에도 떨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독립영화 단체들이 매일 같이 영진위에 가서 시위를 했던 2008년과 2009년의 기억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 아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 사이에도 불신의 벽을 만들었다. 연극연출가 전인철은 블랙리스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던 2015년 창작산실을 언급했다.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분야 지원사업인 창작산실 지원에 선정됐던 연출가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지원에서 배제해 논란을 빚었다.

전 연출은 “그때 저 역시 ‘고제’라는 작품으로 창작산실 지원을 받았다. 박 연출과 관련한 사건이 터지면서 창작산실에 참여한 단체들이 공연을 보이콧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공연을 올리게 됐다”면서 “그때 연극인끼리 상처를 주고 받았고 불신의 벽까지 생겼다. 나 역시 그때 공연을 올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공공기관 내 내부고발자가 받은 부당한 처우에 대한 고발도 이어졌다. 전 연출은 “2015년 가을 팝업씨어터의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유인화 센터장, 양효석 본부장, 임수연 공연사업부장이 공연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그때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직원 김진희 씨가 있었다. 나중에 김진희 씨가 결국 내부고발자가 돼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을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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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그동안 김기춘·조윤선 등에 대한 1심 판결문,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문체부 내부 문건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기획·작성·실행·관리 구조를 파악해왔다. 이날 발표한 1차 보고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시를 바탕으로 문체부의 ‘건전콘텐츠 활성화 TF’에서 영화진흥위원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출판문화사업진흥원·한국콘텐츠진흥원 등 문화예술공공기관을 통해 블랙리스트를 작성·실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사건인 서울연극협회 배제 사건에서는 청와대가 서울연극협회 세력 약화를 위해 조직적인 행동을 펼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문체부 내부 문건을 바탕으로 연극계 주도 세력 교체를 위해 정부가 한국연극협회장 선거에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자세한 내막을 조사 중이다.

이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제보 및 조사신청 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14일까지 총 25건이 접수됐다. 앞으로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진상조사위 진상조사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지금까지 접수된 사건은 25건이지만 여기에 연관된 사람은 몇 십, 몇 백 명이 될 수 있다”면서 “작은 제보라도 좋으니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많은 예술가들이 조사 신청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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