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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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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서 난민·이민자들 잇단 성범죄…반(反)난민 정서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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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에 위협 느껴" 응답, 5년 전 26%→46% '껑충'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난민과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며 반(反) 난민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지난 9일 새벽(현지시간) 로마 중심가 테르미니 역 부근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이 핀란드 여성을 구타하고, 성폭행하는 범죄가 발생하자 최근 계속되고 있는 외국인들에 의한 성범죄 사건을 일제히 주요 기사로 다루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이 방글라데시 남성은 새벽에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핀란드 여성을 차에 태워주겠다고 유인한 뒤 인적이 없는 곳으로 끌고가 범행을 저질렀다.

연합뉴스

성범죄가 일어난 이탈리아 휴양지 리미니의 해변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들 [EPA=연합뉴스]



이에 앞서 지난 달 하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해변으로 유명한 동부 휴양 도시 리미니에서는 20대의 폴란드 여성이 콩코 출신 난민과 모로코, 나이지리아 이민자 2세로 이뤄진 4인조 불량배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며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함께 있던 이 여성의 남자 친구는 용의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2014년 이래 주로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60만명이 넘는 난민들로 가뜩이나 사회적인 부담이 커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난민들에 의한 강력 범죄 소식이 언론을 통해 연일 전해지자 이민자와 난민들에 대한 반감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13일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실린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개인의 안전과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4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수치는 5년 전의 26%는 물론 지난 2월 조사 때의 40%보다도 눈에 띄게 상승한 것이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총선에서 난민 문제를 주된 의제로 삼으려 하고 있는 야당들은 난민과 이민자들에 의한 최근의 성범죄 사건들을 중도 좌파 민주당이 주축이 된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극우 정당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방글라데시 난민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보도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난민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그들 상당수를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정당인 전진이탈리아의 레보라 베르가미니 의원은 "이탈리아 전체 인구의 8%에 불과한 외국인들이 전체 성범죄의 약 40%를 저지르고 있다"며 "난민 대량 유입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성폭행 범죄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이탈리아인은 1천534명, 외국인은 904명이다.

19세기, 20세기 초반에 걸쳐 리비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을 식민 지배한 이탈리아에는 과거부터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심심찮게 도착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개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 등 더 잘사는 북부 유럽으로 향한 터라 이탈리아는 최근까지 백인들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로 머물러왔다.

그러나, 유럽에 반난민 정서가 널리 퍼진 탓에 최근 유입 난민 대다수는 이탈리아에 눌러 앉을 가능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이미 이탈리아에 널리 퍼진 반난민 정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이탈리아 언론은 이런 가운데 반난민 정서를 부추기는 보도를 거리낌이 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달 초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서 이탈리아 부모 슬하의 4세 여아가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일간 리베로는 1면에 "처음엔 가난을 이제는 질병을 가져온다"는 머릿기사를 실어 이 꼬마의 죽음이 난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해외에 한 번도 나갔다 온 적이 없는 이 여아는 다른 병으로 입원했다가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직후 말라리아로 치료를 받던 아프리카 아동 2명과 병실을 공유한 뒤 말라리아 증세를 보여 사망했다.

이탈리아 의학계는 모기를 매개로 감염되는 말라리아는 사람 간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상 기후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이탈리아까지 진출했거나, 병원 의료진의 불법 주사기 재사용 등으로 이 소녀가 말라리아 균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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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첫 흑인 장관을 지낸 세실 키엥게 전 국민통합부 장관 [EPA=연합뉴스]



콩고 태생의 의사이자 현 유럽의회 의원으로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장관을 지낸 세실 키엥게 전 국민통합부 장관은 "이런 식의 언론 보도는 인종주의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문들은 이민자를 이탈리아의 적으로 돌리고 있고, 이탈리아인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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