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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SOS노동법] '대기발령'이 1년 넘었으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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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大法 "부당한 장기 대기발령 무효…직무 핵심부분 제외해 표면상 일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

머니투데이

회사가 근로자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린 것은 정당했지만, 대기발령 상태가 1년 넘게 유지됐다면 이러한 처분은 유효할까요? 아예 일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일부 직무가 부여된 것처럼 보였다면 또 어떨까요?

1996년부터 A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임상교원)로 일해온 B씨가 그만 의료사고를 냈습니다. 병원은 2007년 B씨의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건별로 검토해 진료의 적정성을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환자들은 B씨의 수술 또는 진료에 문제점이 있다는 진술서를 작성해 병원에 제출했고, 병원 인사위원회는 2009년 10월 B씨에게 진료정지결정을 내렸습니다. 인사위는 이러한 진료정지처분을 2010년 12월까지 1년 넘게 유지했습니다.

B씨는 법원에 진료정지처분무효확인소송을 냈습니다. 또 병원이 1년간의 진료수당 2000여만원과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법원은 "(진료정지처분은) 환자의 수술사례에 비춰 B씨의 진료 및 수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지 몰라 미연에 의료사고를 방지해 환자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주된 사유로 보인다"며 "진료정지처분은 일반적인 인사권의 범위에 포함되는 '직무상의 명령'으로 실질적인 징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B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진료정지처분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2010년 12월 이후의 진료정지처분은 무효라고 1심 판결을 변경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진료정지처분은 병원 의사로서의 지위에 관한 한 '대기발령'과 유사한 처분"이라며 "해당 병원으로서는 대학교 교원인사위원회에 대한 B씨의 의견제출 기한이 경과한 시점인 2010년 12월 이후에는 B씨를 진료에 복귀시키거나,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전보나 전근의 인사명령을 내리는 등의 확정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로부터 약 1년6개월이 경과한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병원이) 진료정지처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즉 B씨에 대한 병원의 진료정지처분은 당시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지만, 이를 부당하게 장기간 유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2012다64833)은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대법원 역시 B씨에 대한 진료정지처분을 대기발령으로 보고 "대기발령과 같은 잠정적인 인사명령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을 정도로 부당하게 장기간 유지하는 조치는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병원)는 이 사건 진료정지처분으로써 2009. 10. 1.부터 원고의 진료를 정지시킨 뒤, 그로부터 6개월이나 지난 2010. 3. 30.부터 실질적인 조사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시작하였다"며 "위원회가 2010. 8. 30.까지 5개월간 조사를 하여 2010. 10. 1.경 원고가 진료를 담당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뒤에도 피고는 2010. 11. 29.에야 원고에게 연구전담교수로의 전환을 제안하면서 2010. 12. 10.까지 의견을 제시하라고 통보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는 근로자의 기존 직무범위 중 본질적인 부분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아무런 직무도 부여하지 않은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B씨의 주된 업무는 의사로서의 진료이고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것은 학기당 10시간도 채 되지 않는 정도"라며 "이 사건 진료정지처분에도 불구 원고는 임상교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여 강의나 연구활동을 할 수는 있었지만 종전 직무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아울러 진료를 기초로 한 연구활동도 사실상 어렵게 되었으며 진료수당 부지급, 호봉승급 배제 등의 급여상의 불이익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인성 (변호사) 기자 isbae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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