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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오래전'이날']9월14일 고3 김군의 무한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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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날’]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매 10년마다의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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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14일 수험생의 하루

다음은 몇 년도의 9월14일자 경향신문일까요? 시기를 추측할 수 있는 몇몇 용어는 요즘식으로 바꿔보았습니다.

서울 S고등학교 3학년 김모군. 오늘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4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세수를 하는둥마는둥 한 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김군의 고달픈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학교 근처에 있는 과외선생님 집에서 4시 반부터 시작되는 그룹과외에 늦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닌다. 이 시간에는 버스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

김군은 다른 친구 8명과 함께 9명 1조의 그룹과외를 2학년 2학기 때부터 계속 해오고 있으나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다. 6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과외공부를 한 다음 비로소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로 향한다. 학교 수업시간은 3시간의 보충수업시간을 포함해서 모두 10시간. 당국의 우열반 폐지 지시 이후부터는 과목별 우열반편성으로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받는 것이 좀 귀찮아졌다.

그러나 김군의 일과는 학교공부와 함께 끝나지는 않는다. 김군은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곧바로 종로의 학원으로 향한다. 7시부터 시작되는 단과반에서 국어·영어·수학 등 3개 주요과목을 수강한지는 벌써 3년째다. 학원 책상에 자리를 잡고나면 어느 덧 피곤한 눈이 아물거려 몇 번이고 눈을 비벼보지만 정신은 더욱 몽롱해지기만 한다. 그럴때면 “1년을 버리고 평생을 산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린다.

귀가시간은 빨라야 밤 10시 반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간단한 운동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든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따로 2시간짜리 특강을 받고 있다. 대부분 현직 교사들이 하고 있는 토일 특강은 그 질이나 강의 수준이 높아 일반 과외수업이나 학원에서 얻을 수 없는 특급 입시정보나 출제경향 중심의 수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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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도인지 감을 잡기 어려우신가요? 그럼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린 기사의 나머지 부분을 보시죠.

김군의 과외공부에 쓰는 돈은 월평균 15만원선. 아침 과외 월 8만원, 저녁 학원비 2만원, 주말 특별과외에 5만원. 여기에 교재, 참고서, 교통비 등은 아무리 적게 써도 월 7만원이 따로 든다.

김군은 “같은 반에 있는 학생 중 80%가 과외공부를 하고 있으며 몇몇은 월 50만원짜리 특급과외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학입시가 과외공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고교평준화 이후 심한 개인별학력차 때문에 학교수업만 가지고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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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실린 또 다른 기사입니다. 늘 지금이 가장 치열한 입시지옥인 것 같은데,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 또 그렇지도 않다는 씁쓸한 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973년도 고교입시부터 처음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체력장제도에 따라 달리기 연습을 하던 여자 중학생들이 잇달아 졸도하고 숨진 사고는 현재의 입시편중교육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불상사였다. 죽음까지 부른 문제의 체력장 종목은 800m 오래달리기. 체력의 지구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오래달리기 연습을 하다가 여학생이 숨진 사고는 체력장 제도 실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사건도 골인지점까지 가까스로 뛰어온 학생들이 쓰러지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오래달리기 종목은 사실상 8개 검사 종목 가운데 가장 쉬운 종목이라는 것. 이 종목은 만점을 따려면 여자는 800m를 4분 13초에, 남자는 1000m를 3분39초에 달리도록 해서 처음 실시할 때보다는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이처럼 쉽다는 오래달리기 종목에서조차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평소 학생들의 건강보건상태가 엉망임을 보여준다. 일선 체육교사들은 최근 중고생의 지구력 등 기초체력이 외형상으로만 좋아졌지 조금만 힘든 훈련에도 집단적으로 쓰러지는 등 입시교육에서 오는 허약증세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래달리기는 짧은 시간동안에 질주해 체력을 소모하고 이에 따라 산소의 결핍상태를 가져오기 때문에 평소 단련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것.

이처럼 학교체육이 체력장중심이 되어서는 체력장의 근본취지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 체육전문가들의 염려다. 모든 학교교육이 입시에 편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점수따기식 체육교육은 실질적은 학생들의 체력을 키울 수 없고 또 다른 사고만 불러일으킬 위험을 여전히 안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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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사의 김군은 무거운 교과서, 참고서와 함께 매일 같이 도시락 3개를 들고 다녔습니다. 급식 이전 세대라는 증거죠. 과외 비용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했으나, 월 50만원의 과외비용은 지금으로 치더라도 꽤 부담 가는 비용입니다. 당시에는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700~800원으로 채 천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기사에 나온 고입·대입 체력장 제도는 1972년부터 중3, 고3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나 불의의 사망 사고 등으로 1994년 폐지됐습니다. 대신 권고사항으로 학생건강체력평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 정답은 1977년입니다. 4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의 학교에서는 똑같은 우려와 고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대를 넘긴 수험생의 무한루프. 언제쯤 김군은 입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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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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