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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어, 내 전기자동차 밧데리 용량이 갑자기 커졌네?" 허리케인 피해지역에서 보여준 테슬라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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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마차, 21세기의 전기자동차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를 보면, 그들이 개성과 부를 자랑하던 주요 도구는 여인들의 화려한 모자와 함께 마차였다. 특히 저마다 자태를 과시하던 마차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다. 마차는 20세기 초입부터 자동차로 바뀌었지만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여전했다. 벤츠와 아우디에 더해 렉서스 최급형은 주머니가 넉넉한 사람들이 소유하는 사치재이자, 생활도구이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부터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도로와 하수도, 상수도 처럼 누구나 사용하는 유틸리티(utility)로 의미와 기능이 제한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셉션>을 비롯해 미래 사회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에서 슬쩍 보여주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는 허리케인 ‘어마(Irma)’가 휩쓸고 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자동차에 대해 인류가 가져온 통념을 깨트렸다. 자동차의 하드웨어는 내가 소유하고 통제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자동차 메이커가 좌지우지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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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어마의 피해지역에서 보여준 테슬라의 마술

테슬라 본사는 어마가 플로리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난 9월9일 재난 위기에 처한 고객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대상 차종은 모델S 세단 일부와 모델X SUV였다. 테슬라는 재난지역의 해당 모델 자동차들의 밧데리 용량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본사에서 컴퓨터 자판을 하나 두드리는 것으로 취한 조치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모델S 승용차와 모델 X SUV의 최고 사양 밧데리 용량은 시간당 75㎾이다. 한번 충전으로 250㎞를 달릴 수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가격부담을 느낀 고객들에게 밧데리 용량을 시간당 75㎾ 이하로 조절해서 판매했다. 최고 사양과 최저 사양의 가격차이는 수천달러(수백만원)에 달했다. 그렇다고 밧데리를 더 작은 것을 장착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밧데리를 장착하되 사양에 따라 용량을 제한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난지역 고객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해당 차종의 밧데리 용량을 실시간 인터넷 원격조정을 통해 시간당 75㎾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테슬라 측은 이번 조치가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9월16일까지 1주일 동안만 적용한다고 밝혔다. 물론 고객들의 추가부담 없이 제공하는 무료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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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하드웨어는 소비자의 것이되, 소프트웨어는 생산자의 것

인터넷을 통해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식은 처음이 아니다. 비데오게임이나 프리미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장치에서 이미 하고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동차에서는 처음이었다.

테슬라가 이번에 제공한 서비스는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려는 비지니스전략의 하나였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의 일단을 허문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었다. 자동차를 일단 구입하면 후드를 열어 부품과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한이었다. 선택사양 역시 일단 구입하고 나면 부품을 교체하기 전에는 자동차 수명이 다할때까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운명도 일단 차를 구입한 뒤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자동차메이커에 전화를 한번 거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차체는 여전히 소비자의 재산이되 전기자동차의 핵심부품인 밧데리의 용량이라는 소프트웨어는 본사의 손에 따라 기능이 조절되는 식으로 소유권의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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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좌판 하나로 좌지우지할 수있는 자동차 메이커의 빅브라더화

이번 서비스는 고객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동차메이커의 절대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것이다. 본사의 사무실에 놓인 컴퓨터 자판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 수천, 수만대의 자동차 밧데리 용량을 바꿀 수있는 빅브라더가 될 수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여기에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아마추어 해커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테슬라 본사의 인터넷망에 침투해 자기 자동차의 성능을 높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슬라 본사는 아직까지 출시 자동차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통제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고 한다. 테슬라의 이번 서비스는 온라인 토론 사이트에서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폭스바겐이 300모델을 2030년까지 전부 전기자동차로 출시할 것이라는 소식에서부터 전혀 새롭게 만나고 있는 자동차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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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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