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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탄압 피해 미얀마 탈출한 로힝야족, 우리 곁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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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째 난민생활… 국내 거주 이삭씨가 말하는 '미얀마의 박해']

- 2000년 한국에 '첫발'

방글라데시서 12년 떠돌아 "안산에 한 가족 더 살고 있어"

"군부 탄압에 공무원·군인 못돼… '민주화의 꽃' 수지 정권서도 박해 이어져… 기대 버렸다"

"한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데 국제 인권 문제에 더 신경썼으면"

불교국가 미얀마 서쪽 해안가에는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族) 약 110만명이 살고 있다. 종교적 이유 등으로 정부군의 탄압과 학살에 시달린다. 지난달 사망자가 약 400명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 등 이웃 나라로 탈출한 로힝야족이 30만명을 넘는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3일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사실 우리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우리 곁에도 로힝야족 난민이 있다.

12일 오전 서울 이태원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로힝야족 모하메드 이삭(Ishaque· 51)씨는 휴대전화 속 사진부터 보여줬다. 불에 탄 채 논바닥에 버려져 있는 시신과 불타고 있는 마을, 국경을 향해 도망치는 주민들을 찍은 60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이었다. 며칠 전 고향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72)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은 며칠 전 로힝야족 탄압 사태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삭씨는 "그럼 이 사진들은 뭐냐"고 했다.

조선일보

인터뷰하는 이삭씨… 국내 무슬림 노동자들도 규탄 집회 - 12일 오전 서울 이태원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국내 거주 로힝야족 난민 모하메드 이삭씨가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비판하고 있다(왼쪽). 지난 10일 오후 서울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는 국내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최근 미얀마 정부군이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학살을 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오종찬·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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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씨의 난민 생활은 벌써 29년째다. 고교 졸업 후 1988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민주화가 되면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옥을 들락거리다 인접국가 방글라데시로 도망쳤다. 12년간 방글라데시를 떠돌던 그는 2000년 불법 체류 단속이 심해지자 인도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밀입국 브로커가 한국행을 권했다. 당장 떠날 수 있는 배가 한국행 화물선이었기 때문이다.

15일간 뱃멀미를 참으며 항해한 끝에 한국 부산항에 도착했다. 여권도 없는 불법 체류자였던 그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건 2006년이었다.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무슬림 소수민족으로 종교적·정치적 박해를 받아온 것이 인정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난민을 출신 민족이 아닌 국적으로 분류한다. 미얀마 국적으로 분류되는 로힝야족이 한국에 몇 명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그는 "안산에 한 가족이 더 살고 있다. 그 외에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삭씨는 "미얀마가 민주화되면 로힝야족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민주화의 꽃'이라던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 정권에서도 탄압이 이어지는 걸 보고 기대를 버렸다"고 했다.

이삭씨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은 뿌리 깊다"고 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정부가 국가 통합을 위한다며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했다. 이삭씨의 고향 라카인주(州) 퉁바자(taungbazar) 마을 사람들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는 "로힝야족이란 이유만으로 공무원이나 군인도 될 수 없었고, 명문대 진학도 불가능했다"고 했다.

이삭씨는 현재 미얀마에 남아 있던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80세 노모와 형제들이 있는데 4일 전에 '방글라데시로 피신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주변 마을이 군인들에 의해 모두 불타 없어지자 결국 대피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가족들의 연락은 현재 끊긴 상태다.

이삭씨는 "우리 로힝야족은 불교도와 평등한 대우를 받는 미얀마 국민이 되고 싶을 뿐 다른 걸 바라는 건 아니다"라며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지금으로선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이삭씨는 2007년 미얀마를 탈출한 아내와 한국에서 재회했다. 한국에서 세 아들을 낳았다. 무역회사에서 통역 등을 하며 생계를 꾸린다. 한국이 제2의 조국이나 마찬가지인 셈. 하지만 로힝야족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철저한 무관심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는데, 국제 인권 문제에는 너무 신경을 안 쓴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지금이라도 나서서 로힝야족 학살을 막는 데 목소리를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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