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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국민의당 40석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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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표가 지방선거까지 계속 저렇게 나오면 어려워지는데….”

12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만난 한 더불어민주당 중진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 속에는 전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준 부결로 인한 당혹감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는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고 국민의당에 '당근'을 제시해야 할텐데 고민”이라고 했다.

5·9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막을 연 20대 국회는 절대 강자가 없는 여소야대(與小野大) 환경이다. 제1당인 민주당은 120석에 불과하다. 강한 야성(野性)을 보이는 자유한국당(107석)과 힘이 엇비슷하다. 양측 모두 중간지대의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 정의당(6석)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특히 한 쪽에 과반을 실어줄 수 있는 국민의당 '40석'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12일 ‘김이수 부결’로 충격에 빠진 민주당 의원총회는 국민의당 성토장이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땡깡을 부렸다. 땡깡을 놓는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추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개원식 축사에서도 “정치세력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골목대장도 하지 않을 짓을 (했다)”고 맹비판했다. 추 대표는 행사장에서 같은 당 의원들과는 악수했지만 야당 의원들과는 인사하지 않고 퇴장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이라며 맞섰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 등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다 결국 김이수 후보자를 낙마시켰다”고 말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당은 존재감과 힘을 보여주기 위해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적법여부를 신중히 판단, 고뇌에 찬 투표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당초 협조할 것으로 믿었던 국민의당에서 반대표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2의 정기승 사태’라는 말도 돌았다.

1988년 13대 국회에서 125석의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은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70석)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59석)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놓고 표결처리를 진행했다가 쓴 맛을 봤다.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35석)의 협조를 기대했던 대야(對野) 전략이 문제였다. 정기승 사태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추진하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지금의 여권도 정계개편을 추진할 수도 있다. 정기국회 후 사정(司正)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당장 이번 국회가 문제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대야(對野) 전략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정책회의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안도 문제지만 각종 '개혁 입법'에 복지 확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원만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국민의당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사실 국민의당이 매번 야권 연대에 섰던 것은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부터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때까지 민주당의 숨통을 틔워왔다.

그래서 이날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 자유발언에서도 국민의당에 대한 성토와 함께 '현실'에 대한 토로가 꽤 나왔다고 한다. “인내하면서 함께 가자”는 얘기 등이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김이수 후보자도 단 2표 차로 부결된 것이니 국민의당을 앞으로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구·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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