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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소년범이 다 '괴물' 아니지만, 죄 실감하게끔 벌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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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강화 목소리 커지는데… 일선 보호관찰관 얘기 들어보니]

보호관찰 대상 아이들 상당수, 보살핌 제대로 못받고 자라

재범률 12.3%… 성인의 2배 넘… 일부선 "적절한 교육 우선돼야"

부산 여중생 폭행과 10대가 저지른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후 청소년 범죄의 잔혹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 형사 처벌 면제 연령을 낮추고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성인과 다른 청소년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 해 강력·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만 10~18세 미만)은 약 2만명(2015년 기준).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누구일까?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보호관찰관 눈을 통해 들여다봤다.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준법지원센터. 예전엔 서울보호관찰소라고 하던 곳이다. 한 여중생(15)이 들어왔다. 티셔츠와 반바지에다 단발이다. 작년 자기를 헐뜯는 이야기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를 수차례 폭행해 보호관찰 2년 처분을 받았다. 이 여중생은 보호관찰관과 30분 면담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 여중생은 충동 조절 장애 증상을 보인다. 한없이 얌전하다가도 화가 나면 참지 못한다. 간혹 폭행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박우근 보호관찰관은 "소년범 중에선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산 폭행사건 가해 여중생들도 "피해자가 자신들의 폭행 사건을 경찰에 신고해서 때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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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은 실형 대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 기간 보호관찰관의 지도와 관리를 받게 하는 제도다. 학교 폭력 사범은 폭행 피해 정도가 무겁지 않으면 소년법에 따라 사회봉사 명령이나 보호관찰 등 소년보호처분을 받는다. 서보원 보호관찰관은 폭행으로 보호관찰을 받던 한 중학생(14)이 지난달 또 폭행으로 경찰에 입건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중학생은 자기를 놀렸다는 이유로 위협하며 같은 반 친구를 수차례 주먹과 발로 때렸다. 그 전에도 몇 차례 말썽을 부렸던 이 학생은 면담 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를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 보호관찰관은 "또 문제를 일으키면 소년원에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학생은 "감옥 가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보호관찰관들은 "소년범이 태어날 때부터 '악마'나 '괴물'은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범죄를 일으키기 전부터 폭력 성향을 수차례 드러내 보였을 텐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바로잡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보호관찰 대상 소년범은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학교 교육도 제 기능을 못 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18)은 폭행에 이어 절도로 두 번째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학교엔 퇴학당하지 않을 수준으로만 나간다. 막상 학교에 가서도 친구에게 시비를 걸고 수업 태도가 불량해 보호관찰관에게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 소년원에 갈 위기에 놓인 이 학생은 면담 중에 "인생에 딱히 목표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박우근 보호관찰관은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나왔을 때 돌아갈 곳이 없다"면서 "가정과 학교에 머무르지 못하면 또다시 PC방·노래방·모텔 등을 전전하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쉽다"고 했다.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의 재범률은 12.3%로 성인(5.6%)의 두 배가 넘는다.

보호관찰관들은 소년범 처벌 수위를 성인범 수준으로 강화하는 데는 부정적이었다. 교도소에 들어가서 더 흉악한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대한 처벌에도 회의적이었다. 교육 차원에서라도 소년범들이 죄의식을 느낄 정도의 처벌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14세 미만은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무조건 형사 처벌을 면제받는다. 14세 이상이라도 성인에 비해 처벌 수위가 상당히 낮다.

지난 7월 만 13세 중학생 2명이 초등학생 한 명을 집단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전치 4주의 부상을 입혔다가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피해자의 보호자는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어차피 어린아이라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이들은 처벌을 받지 않으니, 잘못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게 보호관찰관들의 말이다. 윤웅장 서울준법지원센터 보호관찰과장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다 보니 피해자의 고통에 점점 둔감해지고 자기가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호관찰

실형 대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 기간 보호관찰관의 지도와 관리를 받게 하는 제도. 보호관찰 대상자는 야간외출 제한·심리치료프로그램 참여 등 보호관찰관의 지시 사항을 따라야 한다.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소년법에 따라 2년 이내 보호관찰을 받을 수 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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