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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사서 고용기준 좁혀…“도서관 껍데기만 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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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개정안에 사서협의회 반발

공공도서관 사서 3명 두되 ‘면적-장서 확대’ 충원기준 없애기로

국내 법정 사서 인원 2만3222명, 실제 배치된 인원은 4238명 그쳐

“제재규정 없어 안지키기 일쑤… 규정 낮추면 파행 더 심해질것”

동아일보

“공공도서관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 좋죠. 하지만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어 줄 사서 인력은 뽑지 않는데 제대로 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4일 경기도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근무하는 50대 A 씨는 이같이 말하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약 4000m² 규모에 5만 권의 장서를 소유한 중소형 공공도서관이다. 인근에 주택가와 학교 등이 밀집해 있어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의 시민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이 도서관의 사서 수는 4명에 불과하다. 그는 “우리 도서관 규모라면 9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라며 “주민들의 독서 수요 조사, 도서관 정체성에 맞는 도서 구입, 그리고 각종 문화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기엔 지금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내년부터 사서 수가 3명으로 줄어들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공공도서관 사서배치기준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공공도서관당 3명의 사서만 필수 인원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정상적인 사서 업무가 불가능한데 정부의 개선안이 시행되면 공공도서관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7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공도서관을 임기 내에 추가로 300개 더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발표한 ‘제2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도 “공공도서관 1000개 이상, 총 장서 수 1억 권 돌파”를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도서관과 장서 수를 늘리는 양적 목표에만 치중돼 있을 뿐 사서 확충 방안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출판평론가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은 “책을 선별하고 관련 정보를 연결해 주는 지식 큐레이터 역할이 사서의 일”이라며 “도서관을 늘려 무조건 책만 많이 들여 놓는다고 우리나라의 지식 허브인 출판·도서관 생태계를 살릴 순 없다”고 지적했다.

도서관계는 현재도 필수 사서 인원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개선안을 밀어붙일 경우 사서 수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반발한다. 현행 도서관법 시행령에는 공공도서관의 경우 3명의 사서를 두되, 면적이 330m²씩 커지거나 장서가 6000권을 초과할 때마다 사서 1인을 충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문체부의 이번 안에는 3명의 사서 규정 외에 규모와 장서에 따른 추가 배치 기준을 삭제했다. 또 예외 규정으로 연면적 660m² 이하거나 장서가 6000권 이하일 때는 사서 1명만 배치하도록 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기준 공공도서관의 법정 사서 인원은 2만3222명이지만 실제 배치된 사서 수는 전국적으로 4238명에 그쳤다. 권나현 명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관리감독 규정을 신설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게 급선무”라며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현재보다도 규정을 낮춰버리면 재원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선 최소 인원만 배치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체부는 현행 법체계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현실에 맞춘 기준을 도입한 것이라고 개선안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전국의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윤명희 경기도사서협의회장은 “지난달 서울시와 경기도사서협의회에 이어 이달엔 부산·울산·경남에서도 토론회를 여는 등 정부의 개선안이 바뀌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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