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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 (일)

[벼랑끝 한국기업] 최저임금·통상임금…新정부 5개월, 기업들 벼랑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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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보복·한미FTA 재협상 등 대내외 경영환경 최악

-최저임금·정규직 전환…잇단 메가톤급 충격파

-법인세인상 논의·전방위 사정설 겹쳐 불안 가중



“이대로는 못버팁니다.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길 계획입니다.”

대구에서 섬유업체를 운영중인 손모씨(58)는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공장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은 16.4%이다. 예년 인상률 대비 두배 수준이다. 2020년이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원이 된다. 손씨는 “나 뿐 아니라 공장 옮기겠다는 사장들이 여럿이다. 이대로는 공장 운영이 불가능하다. 손실 보전은 한시적이고, 임금인상은 영구적이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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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반재벌, 반기업 정서가 갈수록 팽배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의 사드보복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대외 악재만도 버겁다.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파장, 전방위 사정 등 건건마다 메가톤 급 변수들로 기업들이 국내에서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대내외와 장단기 악재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형국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내던 단체는 붕괴됐다. 재계 컨트롤타워는 사라졌다. 재계 맏형 기업의 총수는 복역 중이다. ‘기업한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란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할 것을 주문했다. 노동ㆍ인권 변호사 출신다운 행보였다. 문제는 이후 불거졌다. 정규직화를 위해선 기존 외주 업체와 용역 계약을 깨야하는데 위약금이 200억원 수준이다. 새정부 출범 5개월째, 여전히 인청공항공사 직원의 정규직화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앞선 사례인 손씨의 최저임금 우려는 중소ㆍ중견 기업 공통의 고민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새 정부 정책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최저임금 1만원(78.1%)’이라 답했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방향성에는 동의하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국회를 방문한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 사안을 입법으로 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행정해석만으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일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에서다.

1일부터 시작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의 ‘뜨거운 감자’는 법인세 인상 논의다. 정부여당은 현행 22%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득세 과세표준(3억초과~5억) 구간 신설도 입법 목표다. 법인세를 3%포인트 인상할 경우 세수 증가분 2조5000억원 만큼 기업의 이익은 줄어든다. 내년도 복지 예산을 대거 늘렸으니 어디에선가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타깃이 기업들이다.

헤럴드경제

삼성과 현대ㆍ기아차 등 핵심 대기업의 경영불확실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재계 맏형 격인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1심 선고에서 5년 실형을 받으면서 사실상 ‘식물기업’ 상태에 빠지게 됐다. 중국의 사드 보복 탓에 중국 철수설까지 나오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전날 최대 1조원에 이르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해 앞날을 장담키 어렵게 됐다. 부품업체와 재계, 정치권에서도 한목소리로 우려했지만 재판부는 철저히 외면했다. ▶관련기사 2·3면



통신업계도 난관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던 통신료 인하를 정부가 밀어붙이면서 곧 요금할인율을 25%(현행 20%)로 높여야 할판이다. 통신사 주주들은 정부 안중에도 없다. 배임으로 국내외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도 있지만 통신사들은 울며겨자먹기다.

기업을 옥죄는데는 사정기관이 한 몫 한다.

검찰은 국내 최대 방산회사 한국항공우주(KAI)를 수사중이고, 경찰은 자택 공사비를 회삿돈으로 지불한 혐의를 잡고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자택 공사비 처리 문제와 관련, 삼성전자 등 여타 기업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의 ‘특수부’격에 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한화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를 진행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몸집을 불리고 있다. 내년 공정위 예산은 전년대비 6.4%나 늘었다. 올해 세출 증가율(1.9%)의 3배가 넘는다. 평년엔 6명 가량이던 공정위 정원은 60명이나 늘었다. 대기업 조사를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기업분할명령제도 검토중이다. 독과점 사항 등이 발생할 경우 그룹을 아예 쪼개는 강력한 제재가 기업분할명령제다. 공정위가 대체 어떤 기준을 갖고 접근할지 재계는 매우 불안하다.

새 정부의 정책은 분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적게 일하고(근로시간단축), 더 주며(최저임금ㆍ통상임금), 더 내면(법인세), 매(사정당국)를 맞지 않을 것이란 의지가 명확하다. 70~80%에 이르는 대통령 지지율은 정책 추진 동력이다. 선한 의지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있다. 사실상 넋이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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