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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인사발령 났지만 "구형 직접 하겠다"…'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결심 공판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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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두 달에 걸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재판의 1심 법리 공방이 일단락됐습니다. 충격적인 내용과 반전을 거듭하는 법리공방으로 사건은 내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저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재판에 참석해 재판정에서 들리는 모든 말, 소위 ‘워딩’을 받아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잔혹한 범행 수법, ‘커뮤’, ‘동성계약연애’, ‘고어물’, ‘역할극’ 등 두 10대 피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1심의 공판들은 매번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여러 공판들 중에서도 그제 있었던 마지막 결심 공판은 검사의 ‘울컥 구형’, 주범 김 양의 ‘고백 증언’, 공범에 대한 ‘무기징역 구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기자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재판이었습니다. 이에 기사로는 전해드리지 못한 결심 공판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취재 파일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1. 서울 중앙지검으로 발령 났지만 "구형 직접 하겠다"
-1심 재판 직접 마무리 짓기 위해 임시 발령 자청한 주임 나창수 검사

사건의 주임검사로 수사와 공판에 모두 참석한 나창수 검사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8월 초,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서울 중앙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으로 발령 났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들 간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 내역을 미국 트위터 본사에 요청하고, 피고인들의 새로운 진술들이 나오면서 재판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이번 사건을 도맡은 나 검사가 재판이 끝나기 전 인사이동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나 검사는 그제 하루, 검찰에 ‘임시 직무 발령’을 신청했습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나 검사는 이번 사건 1심의 방점을 찍는 구형을 직접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나 검사를 위시한 인천지검 수사팀은 처음에는 공범 18살 박 모 양에게 ‘살인 방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를 거듭하면서 수사팀은 박 양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로 결심했고, 공소장을 변경했습니다. 박 양의 죄질이 ‘살인 방조’를 적용하기엔 너무 나쁘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박 양은 초등생 살해 현장에 없었고, 살인 공범 혐의를 입증할 통신 기록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박 양의 공소장을 변경하고, 주범 17살 김 모 양보다 더 높은 무기징역 형을 구형하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때문에 구형의 논리를 다듬고, 재판부를 설득하는 과정을 직접 챙기기 위해 나 검사가 이날 하루 임시 발령을 자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 검사는 박 양의 구형문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피고인은 건네받은 시신 일부를 보며 좋아하고 서로 칭찬할 때 부모는 아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는 부분에서 잠시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아이가 그렇게 죽으면 부모의 삶도 함께 죽는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나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 아동 부모의 진술을 청취하기도 했고,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도록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담당 검사로서, 이번 사건 피해자의 처참한 마음과 극심한 피해를 재판부에 설명하는 대목에서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날카로운 표정과 어조로 거침없이 구형문을 읽어 내려가던 나 검사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침묵이 흐르던 그 순간, 결심 공판장에 있던 모든 이의 이목이 나 검사에게 집중됐습니다. 대개는 날카롭고 차갑게 검사석에 앉아 공판에 임하던 나 검사가 울먹이는 장면은 그동안 재판을 참관하며 나 검사의 모습을 지켜봐 온 기자에게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기자는 나창수 검사의 심정을 직접 듣고자 나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나 검사는 “아직 1심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검찰 공보 규정상 담당 검사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며 정중히 취재를 사양했습니다.

● 2. 판사도 '갸우뚱'…1시간 만에 말 바뀐 주범 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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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이번 사건의 주범 17살 김 모 양은 자신보다 앞서 열린 박 양의 결심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진술을 쏟아냈습니다. “이제는 진실을 밝히고 마음의 무게를 덜고자 한다”던 김 양은 사건 이전과 이후 상황을 고해성사하듯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박 양이 폐와 허벅지 일부를 자신이 먹겠다고 했다, 시신 일부를 훼손해 가져오라고 해 살인의 원인을 제공했고 범행 이전과 이후에도 CCTV 위치파악, 변장 등을 지시해 치밀하게 공모했다는 등의 진술이 나왔습니다.

나창수 검사는 증언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김 양에게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진술해주길 요청했고, 김 양은 머릿 속 장면들을 그림 그리듯 자세히 얘기했습니다. 김 양이 훼손된 시신 일부의 모습, 훼손된 시신 일부를 봉투에 담은 상황 등을 매우 상세히 진술할 때는 방청석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도중에 법정을 나가는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기자 또한 차마 기사로 전달하기 어려운 잔혹한 내용들을 노트북에 받아 적으며 손가락에 힘이 빠지고 속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김 양은 정작 본인의 결심 공판에서는 말이 바뀌었습니다. “아까 증인 진술 때 계획성을 인정한거죠?”라는 판사의 질문에 김 양은 대답을 하지 않더니 변호인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는 돌연 “범행을 저지른 순간만큼은 우발적이었다”는 이전 공판 때의 주장을 고수했습니다. 1시간 만에 180도 바뀐 진술에 판사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범행의 계획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했습니다.

판사의 질문이 이어지자 변호인과 김 양은 여러 차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였고, 나창수 검사는 변호인에게 “구치소에서 직접 박 양을 접견하지 않으셨죠? 의견 조율이 안 된것 같은데...”라고 말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 양 측은 ‘범행 당시만큼은 우발적이었고, 심신 미약의 상태였다’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기로 결론내렸고 검찰은 김 양에게 20년을 구형했습니다. 재판부는 김 양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라며 최후 진술 기회를 줬지만, 김 양은 반성이나 죄송하다는 말 대신 “없습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한 채 법정을 떠났습니다.

● 선고는 9월 22일…재판부 판단의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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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하던 도중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나 검사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무기징역 구형 순간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져 법정 경비원들이 시민들을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재판 전에는 주범 김 양의 법정 형량 상한선이 징역 20년이라, 살해 현장에 없었던 박 양에게는 15년 정도가 구형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예상을 깨고, 올해 만 18세가 돼 ‘만 18세 미만의 소년범에게는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없다’는 소년법 특례조항을 적용받지 않는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양 변호인 측은 박 양이 살해 현장에 없었고, 김 양이 실제 범행을 실행할 줄 모르고 있었다며 살인의 공범 혐의는 무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무기징역과 무죄라는 극단적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셈인데, 재판부는 선고까지 남은 기간 동안 기존 수사와 재판 기록을 아주 꼼꼼히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검찰이 미국 트위터 본사에 요청해 미 연방수사국(FBI)가 확보한 김 양과 박 양 간의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 대화내용입니다. 이 다이렉트 메시지는 김 양과 박 양이 지난 2월 알게된 뒤 범행 다음날인 3월 30일까지 주고받은 내용으로, 그 양이 방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방대한 양의 자료는 FBI가 분석을 마치는 대로 우리 법무부에 넘길지를 결정합니다. 검찰 관계자는 “FBI로부터 자료를 건네받게 되면 검토를 거쳐 재판부에 제출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둘 간에 주고받은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에 박 양의 살인 공모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내용이 있을지, 그리고 이 자료를 검찰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지 등이 박 양의 형량에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본인의 결심공판에서 김 양의 '우발성과 심신미약' 주장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도 선고의 쟁점입니다. 검찰은 김 양에게 현행법상 최고 상한인 징역 20년을 구형했는데, 재판부가 김 양 측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면 형량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면, 증인 진술에서는 계획성을 인정했다가 본인의 결심에서는 우발성을 다시 주장해 판사의 고개까지 갸웃거리게 만든 점, 최후 진술에서 아무런 반성의 뜻도 보이지 않은 점이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번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1심 선고는 9월 22일 오후 2시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립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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