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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능 개편 강행땐 민심 잃는다”… 여권, 김상곤 드라이브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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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개편 1년 유예]전격 연기, 막전막후

31일 ‘수능 개편 1년 유예’ 발표가 있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교육부는 ‘유예는 있을 수도 없고, 검토조차 한 적 없다’며 단호했다. 여론의 비판에도 끄떡없던 교육부의 분위기는 주말을 지나며 뒤집혔다. 수능 개편을 무리하게 추진해 민심을 잃으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여권의 우려가 강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신과 수능을 따로 준비하며 불확실한 입시정책에 마음 졸여야 할 ‘김상곤 세대’ 학생들만 최대 피해자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뒤집힌 수능 개편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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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교육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능 개편 유예를 전격 발표한 데에는 주말 전후로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워크숍(25, 26일) 및 당정협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워크숍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이 우려 의견을 전달했고 비공식 당정회의에서 방침이 수렴됐다”며 “교육철학을 설명할 기회도 없이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절대평가 도입이 논란이 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내년에 선거가 있는데 전체적인 국민 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상에 집착하다 비판 여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정부의 실패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8월 ‘책임총리’로서 교육개혁 속도조절론을 강조한 이낙연 총리의 신중론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의 이 같은 요구에 김 부총리가 지난달 29일 개편 연기를 전격 확정하자 당초 1안 선택을 유력하게 검토하던 교육부 관계자들조차 매우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교육부는 수능 개편을 연기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로 연기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연기에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유예 시 내년부터 현장에 적용될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엉망이 된다는 점이었다. 유예 발표 엿새 전까지도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 연수부터 교과서 제작까지 모든 게 새 교육과정에 맞춰 추진되고 있는데 수업은 바꾸고 시험은 안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대로 수능 개편 유예를 반영해 교육과정 적용을 연기하면 너무나 큰 ‘숙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개편 유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현 중3들의 고교 입시가 시작됐기 때문에 3, 4개월 연기조차 어렵고 △시간을 더 갖는다고 기존 시안보다 나은 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이유도 들었다.

○ “혼란만 1년 더 길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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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교육부는 ‘현재의 시안이 최선’이라는 주장을 공청회 등 여러 곳에서 폈다. △1년 반 동안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를 거쳤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과 고교,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해 여러 교육전문가가 고루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수능 개편 확정이 1년 뒤로 연기되자 교육계에서는 “사실상 혼란만 1년 더 길어질 뿐 달라지는 게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내년 선거만 넘기고 보자는 정치 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가 ‘대입정책포럼’(가칭)을 구성해 각계 의견을 모으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기존의 수능개선위원회가 해온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현 중3이 겪을 일을 중2로 넘겼다는 차이만 있을 뿐 현 정부의 수능 절대평가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는 이날 ‘기존 시안은 폐기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폐기는 아니고 원래 시안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것”이라고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개편안 마련뿐 아니라 개편 유예 결정마저 졸속으로 이뤄지면서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현 중3 학생은 고교 진학 후 수업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받으면서 수능은 2009 교육과정에 맞춰진 현행 수능으로 보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새 교육과정은 이전 교육과정과 과목 편성부터 과목 이름, 단원 구성과 범위까지 많은 부분이 다르다.

예컨대 새 교육과정에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과목이 생겼고 종전에 이과생들이 보편적으로 배우던 ‘과학Ⅱ(물리학Ⅱ, 지구과학Ⅱ, 생명과학Ⅱ, 화학Ⅱ)’ 과목은 진로선택 과목으로 빠졌다. 수학도 문제다. 개정 수학은 ‘미적분Ⅱ’가 ‘미적분’으로 바뀌면서 내용이 달라졌다. ‘기하와 벡터’도 새 교육과정에서 ‘기하’로 바뀌어 진로선택 과목으로 분류됐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능은 현행대로 보게 된 만큼 현 중3 학생은 내신은 내신대로, 수능은 수능대로 공부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 ‘김상곤 세대’는 3중고

김혜남 문일고 진학부장은 “수능에 맞춰 선택과목을 고를 수밖에 없게 된 만큼 사실상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며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엄청날 것이고 사교육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능 20여 년 역사에서 교육과정과 수능이 일치하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배운 내용을 확인한다’는 평가의 기본마저 무너뜨린 유예 발표”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부총리는 이날 발표에서 ‘이전 정부’에서 비롯됐다는 점만 반복해 언급했을 뿐, 논란만 야기한 채 폐기된 수능 절대평가 시안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교육현장의 불신과 혼란만 가중시킨 현 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대입제도 3년 예고제 등 교육법정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데다 배운 교과목을 시험 본다는 당연한 원칙조차 무너뜨린 이번 결정은 사상 초유의 정책 오점으로 교육계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우경임·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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