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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맞춤법의 재발견]잘못 생략하는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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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가능한 vs 가능한 한

가까운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위로하려 흔히 쓰는 말이 있다.

―그런 일은 가능한 빨리 잊으렴.(×)

시험을 출제하는 위원들은 시험 해설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이번 시험은 가능한 쉽게 냈다.(×)


둘 모두 문법적으로 틀린 것들이다. 어느 부분이 왜 틀린 것인지를 금방 찾아낼 수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만큼 우리 문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러나 금방 찾아내지 못하였다 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 문장이 왜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이미 가졌다. 우리가 ‘가능한’과 같은 형식을 어디서 어떻게 쓰는가를 자세히 보면서 우리말 달인의 능력을 발휘해 보자. ‘가능한’의 기본형 ‘가능하다’는 주로 서술어로 쓰는 단어다. ―오늘 내로 그 문제를 푸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가능하다’가 아니라 ‘가능한’이라는 모양으로 이 단어를 쓸 때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이 말은 ‘가능하-’에 ‘ㄴ’이 붙으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어려워 보이는 질문은 예문으로 풀어야 한다. ―가능한 질문, 가능한 사안, 가능한 일정, 가능한 직무, 가능한 업종, 가능한 사람….

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명사를 꾸민다. 국어의 모든 동사와 형용사는 뒤에 명사를 꾸미고 싶을 때 ‘ㄴ’과 같은 장치를 활용한다.

―공부한 사람, 일한 사람, 쓴 일기, 굴린 공, 기쁜 일, 아픈 사람, 예쁜 사람.


형용사나 동사가 명사를 꾸미려면 ‘-ㄹ, -ㄴ, -는’이 붙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본 문장들이 틀린 이유가 있다.

―그런 일은 가능한 빨리 잊으렴.(×)


―이번 시험은 가능한 쉽게 냈다.(×)

위 문장 속의 ‘가능한’ 뒤에 명사가 있는가? ‘가능하-’에 붙은 ‘ㄴ’은 뒤에 올 명사를 꾸미기 위해 붙은 것이라 했다. 그런데 뒤에 명사가 없다. 당연히 틀린 문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문장을 올바르게 수정하려면 ‘가능한’이 꾸며주는 명사가 필요하다. 의미를 그대로 살린 채로 명사를 넣어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그런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잊으렴.(○)

―이번 시험은 가능한 한 쉽게 냈다.(○)

여기서 ‘한’은 ‘한(限)’이라는 한자어 명사다. ‘-ㄴ 한’이나 ‘-는 한’이라는 구문은 관용어로 굳어져 흔히 사용된다. 여기서 ‘가능한’의 끝 부분의 ‘한’과 한도를 나타내는 명사 ‘한’이 같은 발음으로 이어지는 것에 주목해 보자. 흔히 사용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하나를 생략해서 쓰게 되어 ‘가능한 빨리, 가능한 쉽게’와 같은 잘못된 표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략은 어법을 어기는 것이다.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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