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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시신보며 좋아할때 딸 찾아…” 검사, 공범 무기징역 구형하며 울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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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해’ 주범엔 20년刑 구형… 나이가 형량 갈라

동아일보

29일 오후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결심공판이 열린 인천지법 413호 법정. 공범 박모 양(19)에게 무기징역과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구형하는 인천지검 나창수 검사(43)의 목소리가 떨렸다. “피고인은 건네받은 시신 일부를 보며 좋아하고 서로 칭찬할 때 부모는 아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며 울먹였다. 나 검사는 “아이가 그렇게 죽으면 부모의 삶도 함께 죽는 것…”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무기징역 구형에 박 양은 충격을 받은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왼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박 양은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늘로 간 피해 아동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사체유기는 인정하지만 살인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의 방청객 여러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박 양이 시켜…실험동물 된 느낌”

박 양의 결심공판에는 주범 김모 양(17)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양은 범행 계획부터 실행, 사후 처리까지 사실상 박 양의 지시에 따라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내내 김 양은 피고인석의 박 양을 단 한 차례도 쳐다보지 않았다.

김 양은 “(박 양과) 계약연애를 시작한 후 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박 양이 손가락과 폐, 허벅지살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사람 신체 부위를 소장하는 취미가 있다고 했고, 폐와 허벅지 일부를 자신이 먹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김 양은 “박 양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계획하고 있냐고 끊임없이 물었고 범행 장소, 범행 대상, 사체유기 방법 등을 의논했다”며 “(내가) 실험동물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 양은 박 양이 살인을 방관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원한이 있는 사람을 망치로 죽인다’ ‘사람을 도축하듯이 없애버릴 수 있으니 알아보라’는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너보다 어리고 약한 애가 합리적’이라며 범행 대상을 골라줬고 폐쇄회로(CC)TV가 없어서 시신을 유기해도 걸리지 않을 장소가 학원 옥상이라고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김 양은 또 박 양이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 뒤 계약연애를 제안했고 범행 뒤 “제가 형을 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절 좋아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양은 “처음엔 친구를 숨겨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다”고 진술했다. 김 양은 “범행 일주일 전 박 양과 나눈 트위터 내용만 봐도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두 사람의 트위터 메시지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30분에 걸쳐 최후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사실상 성인이고 아이큐가 125”라며 “기억력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불리한 내용은 빼고 역할극 부분만 선택해 왜곡된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박 양은 지금까지 김 양과 나눈 모든 대화나 메시지가 온라인 역할극의 일부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양은 “박 양이 시종 진지했다”며 역할극 주장을 반박했다.

○ 주범, 18세 미만이라 징역 20년

이어 열린 김 양의 결심공판에서 김 양은 살인을 계획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실제 범죄가 계획과 달리 이뤄졌고 제가 피해자에게 동물을 만지지 않게 했다면 범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양은 동성 연인인 박 양과 공모해 피해 아동을 유인한 뒤 목 졸라 살해하고 신체 일부를 잔혹하게 훼손했다”며 징역 20년에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구형했다. 검찰이 직접 살인을 저지른 김 양에게는 징역 20년을 구형하고 공범인 박 양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한 것은 나이 때문이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 당시 나이가 만 18세 미만인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러도 최대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잔혹한 살인의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최대 형량은 징역 20년까지 올라간다.

김 양과 박 양이 살인을 저지른 시점은 올해 3월 29일. 당시 김 양은 2000년 10월생으로 만 16세, 박 양은 1998년 12월생으로 만 18세였다. 따라서 김 양은 소년법과 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최대 형량인 징역 20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김 양에 대해 “죄질이 불량해 무기징역을 구형해야 하지만 범행 당시 16세이므로 최상한인 징역 20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박 양은 만 18세 이상이라 사형 구형도 받을 수 있었지만 검찰은 그보다 낮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9월 22일이다.

○ 탄식, 박수 그리고 눈물

이날 방청객 50여 명의 3분의 2는 사건이 발생한 동네 주민이었다. 김 양의 입에서 끔찍한 내용의 진술이 나올 때마다 방청석에선 깊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견디다 못해 재판 도중 법정을 나서는 이도 있었다. 검찰이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눈물을 흘리는 방청객도 많았다.

고모 씨(45·여)는 “솔직히 박 양이 무기징역을 받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막혔던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며 “두 명 다 무기징역을 받아야 정상인데 김 양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감형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피해 어린이 가족을 돕는 김지미 변호사는 김 양의 진술을 언급하면서 “(결국) 박 양의 존재로부터 시작됐다. 만약 박 양이 없었다면, 김 양이 박 양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가족들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가족들은 중형 선고만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 / 구특교·차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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