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일본 총독이 무단 반출한 '청와대 미남 부처'를 다시 경주로"…국내 문화재 제위치 반환 목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통령 관저 뒤 석불좌상은 신라시대에 제작된 유물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돼

일제감정기에 경주서 남산 총독관저 거쳐 현재 위치에

"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치웠다" 루머 돌기도

시민단체들 "밀반출 해외문화재 뿐 아니라 국내 문화재도 제위치 찾아야"

대통령 관저가 있는 청와대 침류각(枕流閣) 뒤편 샘터에는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불상 하나가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두툼한 입술은 굳게 닫혀 있다. 높이는 약 1m, 제작 시기는 8~9세기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석불좌상(石佛坐像)'이다. 잘생긴 용모 덕에 '미남 부처'라고 불리기도 하고 청와대 안에 위치해 있다 해서 '청와대 부처'라고도 불린다.

중앙일보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불좌상. [사진 문화재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불좌상. 최근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석불좌상을 본래 있던 경북 경주시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는 22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 석불좌상을 본래 장소인 경주시로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불좌상이 경주시로 즉각 반환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에 대해 관련 당국에 직접 지시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또 "원래 경주에 있던 이 석불좌상이 경주시로 반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정신"이라며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관계 법령의 자자귀귀(字字句句)에 얽매이지 말고 시대의 흐름을 존중해 청와대 경내의 석불좌상을 즉각 경주시로 반환하려는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앙일보

청와대 경내 위치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석불좌상. [사진 청와대]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이 불상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병탄(1910년)된 지 2년 뒤인 1912년 경주를 찾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총독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다.

총독은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이 불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 전에 불상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는 주장이 엇갈린다. 경주 남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경주시 도지동의 사찰 유덕사(有德寺) 또는 이거사(移車寺)에 있었다는 연구들이 있다.

중앙일보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총독이 이 불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오히라는 서울 남산에 있었던 총독 관저로 이 불상을 옮겼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된 불상은 27년 총독부 관저(현 청와대)를 새로 지으면서 다시 자리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됐다.

이 불상은 청와대 경내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그러다 이 불상의 존재가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94년이었다. 당시는 구포역 열차전복사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 대형 참사가 잇달아 일어나던 때였다.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경내 불상을 모두 치워버린 것이 원인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불교 신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잘 놓여 있던 불상이 충현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치워졌고, 이 때문에 '사고 공화국'이 됐다는 루머였다.

중앙일보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빌딩에서 바라본 청와대 전경.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침류각(枕流閣). 침류각 뒤편 샘터에 석불좌상이 있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청와대는 고심 끝에 그 해 10월 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이 제자리에 있음을 공개했다. 이후 석불좌상은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불상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경주시로의 반환 문제도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0년대 경주시 문화재 전문가들과 문화단체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석불좌상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경주시로의 반환운동을 경주시에 꾸준하게 요청했다.

앞서 7일에도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석불좌상을 경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진정서를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진정서에서 "부당하게 조선총독부로 불법 반출된 통일신라 불상이 지금도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해외로 밀반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한 사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 돌려받은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1년 일본 정부로부터 환수한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1205책이 대표적이다.

중앙일보

문정왕후·현종 어보.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와 함께 국내에서 함부로 옮겨진 문화재도 제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 원장은 "해외로 밀반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하기 위한 노력은 수십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국내에서 본래 위치를 찾지 못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함부로 옮겨진 문화재가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출신 석불좌상이 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강제로 '고향' 경주를 떠난지 105년이 지났다.

일제에 의해 '청와대 부처'가 된 경주 석불좌상이 100년 넘는 강제 타향살이를 마무리하고 본래 위치에서 '경주 부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