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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추억의 납량특집 ①] 홍콩할매는 왜 홍콩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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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여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는 아이들 사이에 소소한 괴담이 꽤 많이 나돌았다. 이를 테면 이런 건데, 당시 학교마다 응당 서 있었던 세종대왕, 이순신, 이승복 등의 동상님들께서 밤이 되면 서로 싸운다더라, 따위의 이야기 말이다.

또 하나, 쉬는 시간에는 한글 자음모음을 써놓은 종이 위에 연필 한 자루를 놓고 친구 몇이서 동시에 마주 잡는다. 그러고서는 '분신사바' 같은 주문을 읊조리면 귀신이 소환되고 모두 함께 정담(情談)을 나누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도 물리면 그냥 자신이 직접 겪은 귀신이야기를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귀를 꼭 막고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서로 '괴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일부는 그 이야기를 믿었고 설혹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들 때문에 일상생활 안에서 공포를 느꼈다. 특히 밤에 화장실을 갈 때는 실제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손이 하나 쑥 튀어 나와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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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고괴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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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틀어놔야만 잠이 올, 딱 그만큼의 더위가 느껴질 때쯤이면 왜 이런 괴담이 듣고 싶어지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름과 공포 사이에는 나름의 과학적인 논리가 있다. 공포영화를 보며 긴장을 느끼면 뇌는 경고 신호를 온 몸에 보내고, 피부 혈관이 수축돼 얼굴이 창백해지며 소름이 돋는다. 근육이 수축되고 땀샘이 자극돼 식은땀이 나며 식은땀이 증발하면 몸은 더욱 서늘해진다.

선풍기도 없었던 시절에는 그 더위를 무엇으로 견뎠겠나. 엄마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아니었겠나 싶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머리맡 이야기' 역할을 대개 낮에는 학교 친구들, 밤에는 TV가 담당했다. 이제는 집집마다 에어컨이 보급돼서 그런 걸까. 여름 날 '머리맡 이야기'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별 필요는 없어졌어도 가끔 이야기가 고플 때가 있다. 더 이상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섭지도 않고, 분신사바 게임에 귀신님이 소환된다 해도 겁 안 나는 나이가 됐어도 말이다. 한때 우리 어린이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홍콩할매 이야기를 시작으로 추억의 괴담 몇 가지 다시 꺼내보려 한다. 이야기가 고픈 어른들이 한 여름 한잠 푹 잘 수 있도록.

홍콩할매 괴담의 주요 스토리는 이렇다. 반은 인간이요, 반은 고양이인 할머니가 하교하는 어린 초등학생 중에서 적당한 아이를 골라 살해한다는 것.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즈음, 전국적으로 퍼진 이 이야기 덕에 당시 해가 지면 거리에서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다. 할매는 100미터를 10초 안으로 달릴 수 있으며 수미터를 뛰어오를 수 있는 능력자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는 소문도 있었다.

홍콩할매는 아이를 죽이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할매에게 손톱·발톱이 보이면 바로 잡아먹히고 저녁에 돌아다녀도 죽는다. 할매와 이야기할 때 마지막 문장에 '홍콩'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으면 죽고, 화장실 4번째 칸으로 들어가 숨어도 죽는다. 그리고 창문에서 어떤 할머니가 불러도 대답해선 안되고, 창문을 열어서도 안된다. 전화벨이 4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으면 그 또한 죽는다 등등.

그런데 홍콩할매는 대체 어디서 왔는가. 탄생기는 이러하다. 홍콩으로 여행 가던 어느 할머니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함께 타고 있던 아끼는 고양이와 한몸이 되며 원귀가 되었고, 반인반묘가 된 홍콩할매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만 골라 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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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 소동을 다룬 1989년 MBC 뉴스데스크


그런데 이 탄생기를 들여다보면 당시 왜 이 괴담이 뉴스데스크에 나올 만큼 전국 강타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 그 시절 불안했고 두려웠던 몇 가지 사회상들이 소소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왜 홍콩인가.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홍콩 느와르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코믹한 홍콩영화도 많았지만 특히 사람들이 좋아했던 건 홍콩 특유의 질척한 정서가 녹아 있는 느와르였다. 홍콩이라는 단어에는 이국적인 음울함이 저도 모르게 심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하필 왜 비행기 사고일까. 80년대에는 재앙에 가까운 비행기 사고가 2건 있었다. 1983년 소련군에 의해 대한항공 007편이 격추 당한 사건(사망 269명)과 1987년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사망 115명)이다. 이 사건들은 사회적 파장이 굉장히 컸으며 뉴스를 통해 이 사건들을 접할 때는 무척 공포스러웠다는 기억이 있다. 그 공포의 여운이 홍콩할매 괴담에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홍콩할매의 타겟은 왜 아이들인가. 당시에는 인신매매에 대한 사회의 문제의식이 높았던 때였다. 연일 인신매매 관련한 뉴스들이 보도되고 있었으니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이 홍콩할매 괴담은, 아이들을 일찍 귀가시키기 위해 부모님들이 조직적으로 유포시켰다는 음모론이 아직도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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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시선생' 시리즈 속 강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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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이 굳어 다리를 굽힐 수 없는 슬픈 귀신, 강시(僵尸). 달리거나 걸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콩콩' 점프를 하니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강시는 매우 위험한 존재다. '강시'는 '굳은 시체', 혹은 '썩지 않은 시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낮에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밤이 되면 산 사람의 피를 먹는다. 피를 먹힌 사람은 또 다른 강시가 된다. 서양의 좀비와 아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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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똘똘이 소강시' 속 어린 강시(정태우)


그러나 강시의 기원을 좀 찾아보면 그 사연이 제법 애처롭다. 전쟁터나 객지에서 죽은 시체들을 고향으로 옮기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영환술사가 시체에 부적을 붙여 움직일 수 있게 한 뒤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가게끔 했다는 것이다. 이 강시들이 객사하여 묻히지도 못하고 시체인 채로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각종 능력을 갖추게 되는데 날아다니기도 하고 변신을 하기도 한단다. 따라서 힘이 더 세지기 전에 시체를 잘 수습해 염해주어야 한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강시는 그래도 꽤 친숙하고 만만한 캐릭터다. 홍콩 코미디 영화에서 주로 많이 봤기 때문이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콩콩’ 뛰어다니는 겉모습이 일단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얼굴은 하얗게 입술은 빨갛게 강조하는 메이크업도 코믹함을 더해준다. 그리고 강시에게 안 잡히려고 숨을 참는 주인공들의 안간힘도 무척 웃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 앞에 있는 인간을 못 찾고 ‘콩콩’거리는 강시도 마찬가지로 웃겼다.

화장실 괴담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다. 이 괴담의 배경이 될 화장실은 요즘처럼 집 안의 환하고 깨끗한 욕실이 아니라, 주택가나 학교의 공용화장실이거나 집에서 수 미터는 떨어진 실외화장실이어야 한다. 밤에 볼일을 봐야 하는 급박한 순간이 되면 수십가지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쨌든 멀리 떨어진 화장실까지 가야 하는데, 그 길지 않은 밤길에 이 '휴지괴담'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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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내부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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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담은 일본에서 왔다고 전해지는데 그 최초의 사연은 이러하다. 어떤 초등학생 아이가 선생님께 상으로 색종이를 받았다. 너무 좋은 나머지 그 아이는 항상 색종이를 들고 다녔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갖고 갔다. 일을 보던 중 색종이가 변기에 빠지고 말았고, 아이는 색종이를 건지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만 변기에 빠지고 말았다. 살려달라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고 그 아이는 결국 '똥독'이 올라서 죽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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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카봇' 애니메이션 중 한 장면


그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초등학생 아이는 화장실 귀신이 되어서 오는 아이들마다 질문을 하게 된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시간이 흐르면서 휴지 색깔의 옵션도 늘어나 "노란 휴지 줄까, 하얀 휴지 줄까?"라고도 묻는다 한다. 어떤 색깔을 선택해도 결과는 같다. 빨간 휴지를 선택하면 피가 흘러서 죽고, 파란 휴지는 온 몸에 멍이 들어 죽고, 노란 휴지는 온 몸에 고름이 생겨 죽고, 하얀 휴지는 몸의 피가 다 빠져나와 죽는다.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유아기에서 10세 미만의 저학년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혼자 화장실 가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이 없었을 것이다. 밤의 화장실은 유난히 어둡고 유난히 을씨년스러웠으므로. 이제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집 밖을 나갈 일은 없어졌으니 이 ‘휴지괴담’도 거의 사라졌지만, 갑자기 손 하나가 쑥 올라올까봐 변기를 유심히 살폈던 그 당시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이 또한 화장실과 관련된 괴담이다. 역시 일본에서 건너 온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무도 없는 학교 화장실에서 "하나코씨 계신가요?"라고 부르면(13바퀴를 돌고 나서 불러야 한다는 설도 있다) 3번째 칸(4번째 칸이라는 이야기도 많다)에서 희미하게 "네"라고 대답소리가 들리는데 그 문을 열면 하나코가 나와 화장실 안으로 끌고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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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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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는 왜 귀신이 됐을까. 거기에는 또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코라는 학생이 미친 엄마에게 쫓겨 화장실에 숨어있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숨은 사연이 하나 같이 다 비극적이고 애처롭기만 하다. 일본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괴담은 일본 도시괴담으로는 꽤 유명하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화장실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공포의 장소였던 것 같다.

그래도 하나코에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100점짜리 시험지를 보여주면 하나코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겠다는 어른들의 강한 의지를 여기에서 또 발견한다.

이 괴담은 주로 여중생들에게 유행했던 일명 '전교 1등 귀신'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전교 1등을 이길 수 없었던 전교 2등은 전교 1등을 학교 옥상으로 불러 밀어 떨어뜨려 죽이고 만다. 시험을 코 앞에 두고 학교에 혼자 남아 밤 늦도록 공부하던 2등은 어느 날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드르륵, 콩! 콩! 콩! 어? 여기 없네?" 그 소리는 1층을 지나 2층, 2등이 공부하고 있던 5층까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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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펀지' 중 '학교괴담' 편에서 한 장면


공포에 질린 2등은 책상 밑에 숨어 있었는데 드디어 자기 교실 문 앞까지 다다른 그 소리 "드르륵, 콩! 콩! 콩! 콩!...". 2등은 두렵지만 갑갑함과 호기심에 못 이겨 눈을 뜨고 말았는데, 눈 앞에 머리로부터 떨어져 죽은 1등 귀신이 거꾸로 선 채 2등의 얼굴 바로 앞에서 "찾았다!"를 외쳤더라는 이야기다.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괴담 중에서도 공포의 정도를 따지면 최상위 그룹에 낄 만큼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다.

이런 식의 교실 괴담이 다양한 버전으로 양산되던 시절도 있었다. 학교 괴담들이 만연하는 현상을, 숨 막히는 교육현실이 공포 이야기로 반영돼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분석도 당시로선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떠도는 지, 이제 나이가 들대로 들어버린 필자가 알 도리는 없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를 갈구하는 욕구는 여전할 것이라 믿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모자란 나머지, 사람들은 이야기를 향한 욕구를 대개 TV나 영화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통해서 충족하기도 했다. 이러한 욕구를 잘 파악한 방송사에서는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7월·8월쯤에 연례행사처럼 납량특집을 마련해주곤 했다. 예능에서 특집을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 납량특집 드라마도 꽤 제작했다.

'추억의 납량특집' 2편에서는 메가히트작 'M'을 필두로 납량특집 드라마 몇편을 소환해보고자 한다. 인상 깊었던 명장면도 다시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거의 사라져버린 납량 드라마가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작은 기대도 함께 가져 본다.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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