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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MK바이오스타 기업 탐방]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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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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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레고켐."

최근 일본 다국적 제약사 '다케다' 연구원들이 국내 바이오벤처인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1월 리서치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지 반년 만이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글로벌 공룡 제약사가 국내의 작은 신약개발 회사에 대체 무엇이 고맙다는 걸까. 공동 개발을 진행할 수많은 글로벌 파트너사 후보 가운데 굳이 왜 레고켐을 택한 것일까.

대전에 위치한 레고켐바이오 본사에서 만난 김용주 대표는 이 같은 질문에 "다케다는 수년간 풀리지 않고 지지부진했던 자신들의 숙제를 한 방에 해결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한 것"이라며 "무슨 수를 써도 되지 않던 기술의 '구멍'을 우리가 정확히 찾아 메워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레고켐바이오와 다케다는 모두 항체와 약물을 이어주는 ADC(Antibody Drug Conjugate, 항체-약물접합)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회사다. ADC란 암 세포의 특정 타깃에 정확하게 달라붙는 '항체'와 매우 강한 독성을 가진 '톡신(약물)'을 합친 새로운 신약개발 기술이다. 항체의 10~20%는 이렇게 약물과 결합할 수 있다. 간암, 유방암 등 목표로 하는 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표적 항암제 개발에 쓰인다.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가 세포는 잘 죽이지만, 목표 타기팅(적중)이 어렵다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같은 ADC 기술이 빛을 보려면 항체와 톡신, 그리고 둘을 연결하는 링커 기술이 모두 있어야만 한다. 삼박자가 맞아야 소리를 낼 수 있는 셈이다. 현재 ADC 사업을 표방하고 있는 전 세계 제약사 20여 개 가운데 세 가지 기술을 다 가진 경우는 5개사 정도뿐이다. 이 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다케다 역시 마찬가지다. 항체와 톡신은 있지만, 링커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다.

레고켐바이오가 독자 개발한 ADC 링커 기술 '컨쥬올(ConjuALL)'은 이처럼 벽에 부딪쳤던 다케다에 해결책을 안겨줬다. 김 대표는 "우리의 ADC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화, 발전하고 있다는 게 경쟁력"이라며 "순수 직원이 85명이고 자회사까지 포함해 120명이 근무 중인데, 대전 본사에 근무하는 연구개발(R&D) 인력 60명의 절반이 ADC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케다와의 계약이 성사된 뒤로는 글로벌 업체들이 제 발로 레고켐바이오를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벌써 공동 연구만 10여 건이 진행 중이다. 중국 일본 노르웨이 등 전 해외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제약사들이 '검증된 기술'이 있다는 소식에 대전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김 대표는 "올해는 우리에게도 변곡점이 될 중요한 해로 현재까지 도출한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 이전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라며 "단기간 수억 원의 흑자를 내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10년을 손해 봐도 조 단위 가치를 가지는 글로벌 신약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레고켐바이오의 중장기 비전과 향후 방향 설정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2010년 ADC 사업에 처음 발을 들인 후 벌써 7년인데 아직 상업화에 성공한 의약품이 없다"며 "2024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7~8개 정도의 의약품이 새로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 우리의 신약을 포함시키려면 어떻게 전략을 짜야 할지 고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진입할 때는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임상조차 몇 건 안 됐는데 지금은 65개, 후보 단계까지 합하면 3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7년 후면 ADC 시장이 100억달러 규모로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레고켐바이오의 강점인 링커 기술만 판매할지, 항체와 톡신을 가진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상품을 계속 개발할지, 전임상과 임상 1~3상 중 어디까지 독자적으로 진행할지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위험(Risk)과 기회(Opportunity)를 따져보고 있는 것. 현재 레고켐바이오가 보유한 10여 개의 ADC 자체 파이프라인의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이다. 특히 공룡 기업이 레고켐바이오와 같은 혁신 벤처들을 빠르게 인수·합병(M&A)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 회사를 팔기엔 이르다며 직접 신약 개발을 하고 싶은 의지를 내비쳤다. 김 대표는 "파이프라인 하나를 우리 힘으로 임상 1상까지 개발하는 데만 약 200억~300억원씩 들어 10여 개를 동시에 개발하려면 2000억~3000억원씩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임상 2상까지 가려면 하나당 비용이 500억원으로 늘어나 비용 부담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반면 후보물질 단계에서 판매하면 가치를 높게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그럼에도 개발을 이어갈 생각이며, 미국 현지법인을 세우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신약개발 회사는 늘 사람이 부족한데, 미국은 인재 풀이 넓고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대전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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