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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벤트 솜씨 얼마나 좋기에… 장관·실장도 손 못대는 '王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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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의식 논란에도 다시 전면에… 여가부장관, 무력감 토로

임종석 비서실장도 "대통령의 인사권 존중돼야" 힘 실어줘

- 탁현민, 대통령 취임 100일 기획

文대통령, 이벤트 싫어했지만 2011년 만난 후 조금씩 변화

참모 커피타임·재벌 호프미팅 등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줘

- 野 "도덕적 타락자인데…"

"이벤트 정치의 막후 기획자… 시중엔 '탁현민의 靑'이란 말도"

靑일각 "기술자일 뿐… 과장됐다"

다시 탁현민(44)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이 '무대'에 등장했다. 탁 행정관은 과거 책에서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테러"라는 등 남성 중심적 성(性)의식이 문제가 돼 사퇴 압력을 받아왔지만 "일은 잘한다"는 청와대의 묵인 속에 근무해왔다. 본인도 이런 세간의 눈을 피해 무대 뒤에 주로 머물러 논란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무대 위에 선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다. 탁 행정관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최근 이벤트를 준비하며 무대 뒤에서 앞으로 걸어나왔다.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거기에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이 탁 행정관 사퇴 의견을 냈지만 무시된 것을 21일 국회에서 말하며 "제가 좀 무력하다"고 답한 것도 화제였다. "장관보다 센 왕(王) 행정관" "'쇼통'(소통을 비꼬는 말) 기획자" 등 비판론과 함께 "일개 행정관 문제로 청와대를 비판한 적이 과거에도 있느냐"는 청와대의 하소연 등으로 논란은 커지고 있다. 포털에서 몇 달째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등장하기를 반복하자 '기→승→전→탁''탁모닝(매일 탁현민 논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2일 열린 국회 운영위에서도 탁 행정관이 화제였다.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은 "어떻게 여가부장관이 (탁 행정관 때문에) '무력하다'고 하느냐"고 하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이 존중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정 장관은 (입장을) 잘 전달해줬고 우린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탁 행정관이 어떤 존재인지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인정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들은 탁 행정관을 2가지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하나는 이미 거론된 성(性) 인식 문제고 또 하나는 '이벤트 정치'의 막후 기획자라는 것이다. 높은 지지율의 바탕이 되는 문 대통령의 '소통 정치'가 사실은 탁 행정관의 '이벤트 정치' 덕이라는 관점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1일 정권 홍보쇼라는 비판을 받은 대국민 보고대회를 거론하며 "도덕적 타락자인 탁 행정관이 기획한 그들만의 잔치, 예능쇼, 천박한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시중에서는 '탁현민 청와대'라는 말까지 돌아다닌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 대통령 맞느냐"는 지지 진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탁 행정관을 곁에 둘까.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인터넷에 글을 올려 "참여 정부 때 경호상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았다"며 "문 대통령이 그런 아쉬움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원하는데 기존 청와대 방식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어 탁 행정관이 필요했다는 취지였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 설명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 때 "싫어도 누굴 만나 웃어라" "쇼라도 하자"고 하면 "꼭 해야 하느냐"며 이벤트 정치에 심한 반감(反感)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 북 콘서트부터 시작된 탁 행정관의 만남은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며 대통령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집무실의 일자리 상황판, 재벌들과의 호프 미팅, 청와대 참모들과의 커피 타임, 그리고 대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기자회견, 인디밴드와 개그맨이 등장하는 행사 어디에서도 문 대통령은 어색하지 않았고, 거기에는 탁 행정관이 있었다.

이와 함께 대선 패배 직후, 히말라야 트레킹 등 문 대통령이 가장 힘들었던 때 함께한 경험도 탁 행정관의 자산으로 꼽힌다.

물론 청와대 내에서도 '탁현민 능력자론'에 대한 이견이 있다. 탁 행정관은 이벤트를 담당하는 '기술자'일 뿐인데 너무 과장되게 포장돼 있다는 것이다.

김경수 의원은 지난달 "(탁현민 문제의)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고 했었다. 그 후 한 달 이상 지났지만 탁 행정관은 건재하다. 국민들이 탁 행정관의 청와대 근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 인식이다. 탁 행정관은 지난달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못 할 때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아직 그만두겠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있다.

[정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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