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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우아하고 섹시한 클림트의 그녀 에로틱하면서 외설적이라 오히려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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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클림트의 작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I(Adele Bloch-Bauer II, 1912년)’. 2006년 11월 6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추정가(약 450억~680억원, 미화 약 4000만~6000만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금액(약 1000억원, 미화 약 879만달러)에 낙찰돼 큰 화제를 낳았다.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당신이 본 가장 에로틱한 그림은 무엇인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작품은 역사적으로 숱하게 많다. 그런 그림을 그린 탓에 모진 풍파를 겪은 예술가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회적 냉대 속에서도 자유로운 시대정신 표현과 혁신적 아름다움 구현을 위해 외설 시비나 스캔들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은 고집 세고 개성 강한 화가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년)를 꼽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매혹적인 그림 성향에 걸맞게 클림트는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화가였다. 하지만 예술적 신념을 위해서는 급진적인 활동도 마다하지 않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기도 했다. 1897년 구태의연한 예술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창단하고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 그 첫 번째 증거다. 당시 유럽 전역에는 다수의 분리파가 있었으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것은 이 그룹이었다. 이는 단연 리더였던 클림트, 그리고 그의 애제자 에곤 쉴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재능과 노력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음악으로만 알려졌던 빈을 진정한 예술 도시로 거듭나게 한 성장동력의 심장과 같은 존재들이다.

빈 분리파는 이름과는 달리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통합, 미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총체적 예술을 지향했다. 이 때문에 화가만이 아니라 공예가, 건축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빈 분리파 전시는 회를 거듭할수록 큰 호응을 얻었고, 클림트의 명성 또한 날로 높아져갔다. 그러나 1902년 제 14회 전시로 인해 예상치 못한 큰 시련이 닥친다. 이 전시는 음악 공연과 미술을 함께 선보이기 위해 클림트가 야심 차게 기획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모티프로 하는 벽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벽화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클림트는 이 벽화에서 성(性)과 사랑, 구원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악마의 유혹을 견뎌내고 진정한 사랑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긴 여정이 클림트만의 기법으로 아름답게 묘사됐다. 문제는 지나치게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모습의 여인들이었다. 대중들은 성도착증을 운운하며 한순간에 냉담하게 돌아섰다. 하지만 클림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고집을 엿보게 하는 또 다른 증거다. 그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빈대학교로부터 대강당 천장화 세 점을 각각 철학, 의학, 법학이란 주제로 의뢰받은 클림트는 생로병사로 고통받는 인간의 숙명적 굴레를 나체 군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마치 이성을 앞세우는 학문 자체를 부인하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학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이런 이단아 같은 작품 성향과 외골수 성격으로 인해 클림트는 주류 미술계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환상적인 명작, ‘키스(Kiss, 1907년)’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이 탄생하는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클림트의 전성기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한 개성과 재능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을 세간의 평과 상관없이 꾸준하게 지원한 후원자들의 공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가운데서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는 특히 중요한 존재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빈의 문화예술 전반을 지원하는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다.

2006년 11월 8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단 한 번도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명작이 출품됐기 때문이다. 세련된 드레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인의 전신 초상화로, 1912년에 클림트가 그린 작품이었다. 경이롭게 아름다운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아델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Ⅱ’라는 제목에서 엿보이듯 이 작품은 클림트가 그녀를 그린 두 번째 초상화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궁전에 오랫동안 걸려 있다가 이 경매를 통해 최초로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 컬렉터들의 높은 관심 속에 약 1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에 낙찰됐다.

오스트리아 정부 소유의 이 작품이 어떤 연유로 경매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블로흐-바우어는 부유한 유태인 무역상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아델레의 초상화를 비롯, 이 집안의 애장품이었던 클림트의 작품 5점이 나치에 의해 몰수당했다. 이후에 오스트리아 정부에 귀속돼 궁전에 걸려 있었다. 1998년 마침내 나치가 몰수한 사유재산을 본래 소유주에게 반환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는 블로흐-바우어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로, 법안이 통과되자 정부를 상대로 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집안의 소장품을 되찾기 위한 지루한 공방은 몇 년이나 지속됐다. 2006년 결국 그녀는 클림트의 작품 5점을 전부 반환받기에 이른다.

매경이코노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가 모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유디트(Judith I, 1901년)’.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강인한 여성을 클림트 특유의 감성으로 관능적으로 묘사해 발표 당시 화제가 된 작품. 화려한 금박 장식을 도입한 이 작품은 공예와 미술을 접목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


반환 당시 90세가 된 마리아는 작품 처분을 결심하고, 황홀한 황금빛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을 뉴욕의 노이에 미술관(The Neue Galerie New York)에 약 1500억원(약 1350만달러)에 팔았다. 20세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이 미술관의 컬렉션 중 가장 값비싼 작품일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작품이었다. 이후 그녀는 나머지 4점을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처분했다. 1000억원에 낙찰된 아델레의 초상화를 포함, 4점의 낙찰가 총액은 약 2200억원(약 1930만달러)에 달했다.

사실 법안 통과 이후 마리아는 5점 중 풍경화 한 점만 돌려받고 나머지 대표작 4점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할 생각이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미국 시민이 됐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션 비즈니스로 성공해 재정적으로 상당히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정부가 탐욕스럽게도 마리아의 소박한 요청을 완전히 묵살해버렸다. 이에 화가 난 그녀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 셈. 작품을 반환받은 후, 그녀는 홀로코스트 미술관 등을 후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작품을 처분해 기금을 마련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한 마리아의 승리는 나치가 몰수한 사유재산 반환소송의 역사적 이정표가 됐다. 같은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이런 배경에서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과 법정 공방 스토리는 영화화되거나 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마리아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판매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Ⅱ’의 구매자는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였다. 그녀는 2016년 이 작품을 구매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에 중국인 컬렉터에게 판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클림트 작품의 어떤 점이 컬렉터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아델레의 초상화를 다시 보자. 갸름한 얼굴에 나른한 눈빛, 그러면서도 품위 있는 모습이다. 그녀를 둘러싼 다채로운 색상과 장식들, 거기에 대조를 이루는 대담한 구성과 형식. 이 작품에는 철학계의 이단아 프로이트, 작곡가 말러를 비롯해 지성이 번득이던 세기말 빈의 문화적 분위기와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아시아 미술과 모자이크 기법 등 다양한 양식을 끝없이 실험한 클림트의 도전적 삶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미학적 혁신 모두를 거머쥔 그의 그림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컬렉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매경이코노미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6호 (2017.09.20~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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