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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홍기영칼럼] ‘포용적 금융’과 금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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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금융은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다.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맥과 같다. 금융은 기업 투자, 개인 소비와 자산 형성을 도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2008년 국제 금융위기는 금융의 역할에 의문을 던졌다. 지난 50년간 세계적으로 실물 성장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기업과 가계에 자금이 공급됐다. 금융 공급이 지나칠 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고혈압, 당뇨병같이 경제에 합병증이 생긴다.

‘지속 가능한 포용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건강한 금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선진국 클럽, OECD가 2년 전 발표한 정책보고서 제목이다. 보고서는 과잉 금융의 추세가 소득과 부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장기적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기업 여신보다 가계대출 비대화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은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취약성을 시정하려는 노력이다.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소외될 수 있는 서민뿐 아니라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선진 20개국(G20) 정상은 7월 함부르크 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빈곤 퇴치를 위해 금융 포용성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G20 금융포용 액션플랜’은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400조원에 육박한다. 지나친 금융화, 빚잔치에 의한 부의 편중이 심각하다. 고소득층일수록 손쉽게 은행 대출을 받아 자산을 증식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한다. 문제는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지 않고 부동자금화하면서 투기를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는 지난해 말 24만2000명으로 전년(21만1000명) 대비 14.8% 늘어났다. 이들 상위 0.47% 부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연평균 10% 늘어나며 지난해 말 552조원에 달한다. 이는 가계 금융자산의 16.3%를 차지한다. 금융 서비스가 부자의 자산 증식 수단이 됐다는 비판도 드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정책의 화두로 생산성과 포용성을 동시에 내걸었다. 생산성은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연관된다. 자칫 새 정권의 방점이 찍힌 포용성과 엇박자를 이룰 수 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분야와 혁신기업 등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분야의 기업 지원에 금융의 역할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수출을 돕기 위해 ‘견인금융’을 출시,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수입하는 해외 기업에 내년까지 1조원을 융자해준다는 데 성과가 주목된다.

가계 금융에선 부동산 투자용 담보대출을 억제하는 소위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소득이나 담보가 충분치 못한 생계형 대출까지 막히면 곤란하다. 포용적 금융과 관련해 정부는 법정 최고 대출금리를 20%까지 인하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중·저신용자(4~7등급)에 대한 ‘사잇돌’ 중금리 대출 공급을 늘린다. 아울러 대출금 상환 책임을 담보로만 한정하는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을 개인에게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금융기관이 지역에서 유치한 예금을 지역 내 개인·중소기업에 대출토록 의무화하는 지역재투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 논란의 소지도 많다.

금융이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에만 동원될 경우, 금융산업 국제 경쟁력 강화와 빅데이터·핀테크 등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 개발 촉진책이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사실 올 상반기 은행·보험·증권·카드업계는 유례없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포용적 금융을 앞세운 정부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 관행에 어떤 규제 폭탄을 던질지 금융회사는 좌불안석이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2호 (2017.08.23~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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