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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고]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선언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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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통령이 임기 시작 3일 만에 깜짝 방문한 인천공항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상징이 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선언은 100일을 맞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그 무엇보다 뜨겁고 혼란도 크다. 보수정당과 친재벌 단체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재정 여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 이분법 프레임으로 정규직 전환 논의를 가두려 한다.기득권의 논리와 관점으로 변화를 교착시키려는 시도 앞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각, 관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망원경과 현미경 덕에 우리는 우주, 세포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고 한 발씩 전진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우리가 맞닥뜨린 정규직 전환에도 마찬가지다. 망원경으로 저 멀리 외환위기 직후 90년대 후반과 지금을 비교해볼 수 있다. 당시에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해 ‘작은 정부’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많은 역할을 민간으로 넘겼고(민영화/민간위탁), ‘비용절감-이윤증대’를 위해 노동유연화(비정규직 확대, 쉬운 해고)를 밀어붙였다. 공공서비스는 후퇴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2001년 민간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90%로 개항한 인천공항은 그 정점에 서 있다. 2017년 정부는 왜곡된 국가 고유의 영역을 정상화하려 하고 있다. 첫 단계가 바로 정규직 전환이다. 공공서비스의 생산을 국가가 다시 맡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개인의 고용안정, 처우개선을 넘어 ‘나라다운 나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의 의미를 발견한다.

예산이 당연히 최우선이다. 그러면 ‘권력형 비리’로 낭비되는 예산을 막아야 하고, 부의 재분배를 위해 정의로운 세금제도를 확립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 세력이 기를 쓰고 ‘재정 여력’ 이분법 프레임으로 가두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다. 혹자는 100일 동안 인천공항에서 진척된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현장을 확대해 볼 현미경이 필요하다. 현장은 17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노조는 1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소식지를 배포하면서 정규직 전환의 정확한 사실관계와 노조의 필요성을 알렸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출퇴근 버스 30대에 ‘노조 가입’ 광고를 하고, SNS를 활용해 24시간 가리지 않고 현장 노동자들과 소통했다. 8월25일에는 비조합원까지 1만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모아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한마당’과 같은 새로운 실험을 준비 중이다. 유례없이 3개월 만에 8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용기를 내 노조에 가입했고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노무는 사용하고 책임은 회피해온 17년 간접고용 적폐가 한번에 폭발하고 있다.

일 잘하는 것보다 관리자에게 잘 보여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고 승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관성도 없고, 이유도 모르게 바뀌는 교대근무 체계 때문에 신체 리듬이 망가져도 참아야 했다. 법에 보장된 연차도 대체 근무자를 구해놓지 않으면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최상의 역량 발휘가 가능했을까.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관리했다면 이런 불합리하고 임의적인 체계가 가당키나 했을까.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니 정규직 전환은 고용안정을 넘어 노조를 통해 불합리에 맞서면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계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정규직 확산 20년, 정규직 전환 선언 100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더 많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고 더 많은 노동자들과 ‘나라다운 나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노조’를 만들어가자.

<박대성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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