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은하선의 섹스올로지]유혹하고 싶다면, 희롱하지 말지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의 ‘섹스하자’는 메일, 차에 태워주겠다는 제안…. 호의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성들에겐 불쾌감과 공포야.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이 억울해? 잠재적 성폭력 피해자로 사는 우리보다 낫잖아. 듣는 여자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제안 하지 마. 성희롱해놓고 농담이라 하지 마. 세상에 그런 말 안 하는 남자 없다고 두둔하지 마.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 여성을 모욕하는 ‘젠더 감수성 제로’ 남성들은 앞으로 점점 더 여자랑 연애하기 힘들 거야.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섹스하자며 무작정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나에게 메일을 보내는 이들은 왜 전부 남성들일까. 다양한 스펙과 나이를 가진 남성들이 나에게 섹스를 제안하는 메일을 보내곤 한다. 어떤 50대 남성은 나이에 대해서 선입견 갖지 말고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첨언을 덧붙여서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긍정적인 답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까.

섹스에 대해서 글을 쓰는 여자니까 언제든지 섹스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나에게 섹스하자고 단 한번도 메일을 보내지 않았을까.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른 새벽, 기차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바람이 쌀쌀했고 꽤 오래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 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남성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더니 나에게 어디 가냐며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조금 뒤에 차는 다시 떠났다. 왜 나는 그 차에 올라타지 않았을까. 아마 많은 여성들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호의를 단순히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섹스하자는 메일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단순한 유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태워주겠다는 제안에 공포를 느끼지 않고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살기 편했을까.

언제든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남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남자로 살기 정말 힘들다고. “지하철에서 그냥 자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몰카를 찍는다고 오해를 받아서 짜증났다. 계단에서 치마를 가리고 가는 여성들을 보면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남자들을 보면 참 부럽다. 물론 나는 남자들의 삶에 대해 전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잠재적 성폭력 피해자’로 사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한다. 섹스를 하자며 메일을 보내는 남자와 새벽에 자신의 차를 타라고 제안한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받아서 억울한 남성의 삶을 살아왔거나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본 적은 없을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그리도 쉽게 내뱉었나보다. ‘여자는 꽃’이라거나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와 같은 말들을 한 점 부끄럼 없이 말이랍시고 만들어내는 ‘일부 남성’들이 있다. 듣는 여성의 기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예뻐서 듣기 좋으라고 꽃이라고 했을 뿐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자들 때문에 무슨 말을 못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두 번째 궁금증이 생긴다. 왜 어떤 남성들은 여자들이 싫어하는 짓을 계속하면서 여자들과의 연애 혹은 섹스를 꿈꾸는가. 더 쉽게 풀어서 말해보겠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에게 섹스를 하자며 메일을 보내고, 자신의 차에 타라고 제안하고, 휘파람을 불고, 위아래로 훑는 남성들은 뉴스를 보지 않는가. 정말 그런 방법으로 여자와의 연애 혹은 섹스가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안될 거 알지만 혹시 모르니 찔러보는 건가. 아니면 사실은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가. 그랬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모든 관계는 상호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당연한 관계는 없다. 친구 관계도, 가족 관계도,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어떠한 관계도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당연한 현실 속에서 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여성이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바라는가. 자신이 그만큼 매력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와 연애를 하거나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그러니까 여성들이, 자신을 좋아해주는 남성을 무조건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남성을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원하는 여자들이 그만큼 많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더 이상 여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성과의 결혼이 여성에게 ‘행복’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게 된 여성들은 혼자 살기 혹은 남성과 살지 않기를 결심하고 있다.

남성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요즘 여자들은 정말 이기적이라는 말을 열심히 중얼거려 보지만 여성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나는 묻고 싶다. 정말로 ‘이성애자 남성’들은 여성과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가. 왜 여전히 성희롱을 하면서 농담이라고 우기고 있는가. 각종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오는 한국 사회에서 왜 남성들은 여전히 젠더 감수성 제로인 상태로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왜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가. 그리고 도대체 왜 사회는 이런 남성들을 응원하고 있는가.

얼마 전 모 의대에서 남학생 11명이 성희롱 발언을 해서 징계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얼굴과 몸매가 별로지만 섹스하고 싶은 여학생’을 고르고 얼굴이 별로니까 봉지를 씌워놓고 하면 되겠다는 말을 주고받은 것이 공개되면서 징계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놀랍게도 뻔뻔하다는 사실이다. 반성은커녕 ‘분위기에 휩쓸려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것뿐’이라며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그리고 재판부는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의 결론이 날 때까지 징계처분의 효력을 정지했다. 또 올해 2학기 수강신청과 교과목 수강을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학교 측에 명령했다. 그리하여 성희롱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대체 저런 이야기 안 하는 남자가 어디 있냐며 이들을 안쓰러워하는 남성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째서 이러한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발전하고 있는가.정말 여성과의 연애 혹은 섹스를 원하고 상호적인 관계 맺기를 원한다면 어째서 여성들이 싫어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가. 여성과 섹스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강하게 전시하기 위해서 굳이 여성을 성적으로 모욕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을 성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성적으로 욕망할 수 있다.

예언을 하나 하겠다. 남성연대 안에서 끈끈함에 취해 서로를 응원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은 여성과 연애하기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 어떤 여성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적으로 모욕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여성들은 위험하지 않은 남성과의 관계를 선호할 것이며, 젠더 감수성이 높은 남성들이 연애시장에서 각광받을 것이다. 나를 성적으로 모욕하지 않는 남자, 나를 술자리 안주로 소비하지 않는 남자, 나를 헐값으로 깎아내리지 않는 남자, 더 나아가 나를 강간하지 않고 나를 때리지 않는 남자를 원하는 여성들은 더 많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성을 만나고 여성과 연애하고 여성과 섹스하는 여성들도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참고로 나는 요즘 들어 여성을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여성들로부터 자주 받는다.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