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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Science &] 과학자들은 왜 개기일식에 흥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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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인 호우(Ho)와 하이(Hi)가 술을 마시고 일식을 관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인 기원전 2137년. 문헌에 따르면 중국 천문학자의 역할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것이 황제의 지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호우와 하이라는 천문학자는 일식을 예측하지 못했다. 일식은 달과 태양, 지구의 운동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옛사람들에게는 '불길한' 일이었다.

중국에서는 일식이 시작되면 보이지 않는 '용'이 나타나는 것이라 믿었다. 재빨리 북을 치고 하늘로 화살을 쏴 용을 쫓아내야 했는데 호우와 하이는 술에 취해 있었다. 달이 지구를 스쳐 지나가면서 아무 일 없이 일식은 끝났다. 하지만 가슴을 졸였던 황제는 두 천문학자를 사형에 처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일식이 일어날 때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부터 동부 대서양 해안까지 90분간에 걸쳐 대륙을 가로지르는 개기일식이 펼쳐진다.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가리는 현상으로 태양 전체를 가릴 때를 '개기일식'이라고 부른다. 고대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식은 불길함, 재앙, 파괴를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용이, 인도에서는 '라후'라 불리는 악마가 출현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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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식이 행성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은 사그라들었다. 이제 일식은 우주가 인류에게 주는 경이로운 '쇼'가 됐다. 99년 만의 개기일식에 미국의 목 좋은 호텔은 이미 1년 전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일반인만 개기일식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도 애타게 개기일식을 기다린다. 개기일식이 시작되면 과학자들은 특수한 장비로 하늘을 바라보고 애드벌룬을 띄워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어둠이 시작되는 순간, 과학자들의 눈은 반짝인다.

지구에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의 중심에서는 초당 약 5억t의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1초 동안 방출하는 에너지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100만년을 쓸 수 있을 만큼 많다. 그만큼 뜨겁다.

태양 중심의 온도는 약 1500만도. 활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질수록 온기가 가시듯이, 태양 중심에서 표면으로 갈수록 온도는 점점 떨어진다. 태양 표면의 온도는 약 5500도.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태양 표면에서 벗어나면 갑자기 온도는 수직 상승한다. 태양의 대기를 '코로나'라고 부르는데, 코로나의 온도는 1만도에서 높을 경우 수백만 도까지 올라간다.

지구는 표면에서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온도가 떨어지는데 왜 태양은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임은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코로나의 온도가 태양 표면보다 높은 이유를 인류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며 "개기일식은 코로나를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 가지 가설로 설명한다. 먼저 '나노플레어 가설'이다. 플레어란 태양 대기에서 발생하는 폭발을 의미한다. 플레어가 발생하면 코로나에 있던 고에너지 입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된다. 플레어로 인해 방출되는 입자가 지구 대기에 있는 산소, 질소 원자와 충돌해 빛이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오로라'다. 나노플레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큰 플레어가 아닌 작은 플레어를 의미한다.

나노플레어 가설에 따르면 수백만 개의 작은 나노플레어가 발생하면서 코로나로 열을 전달하고, 이것이 코로나를 뜨겁게 데우면서 태양 표면보다 높은 온도를 만든다.

두 번째 가설은 '자기장 파동 가설'이다. 코로나는 태양의 표면에서 마치 도넛의 일부를 자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코로나의 고리 안쪽으로 '알프벤파'가 발생하면서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자기장 파동 가설이다. 알프벤파란 자기장이 존재하는 곳에서 생성되는 일종의 파동을 의미한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알프벤파가 나타나면 태양 표면에서 떨어진 곳에 에너지가 증폭될 수 있다"며 "이 에너지를 받아 코로나의 온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는 가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가설일 뿐, 코로나의 온도가 높은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임은경 선임연구원은 "두 가지 가설이 코로나의 온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며 "이외에 또 다른 기작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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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은 코로나를 관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과학자들은 코로나 관측을 위해 망원경에 태양을 가리는 차폐막을 설치한다. 망원경 속에 인위적으로 일식 현상을 만드는 셈이다.

하지만 임 선임연구원은 "차폐막 주변으로 산란광(산란에 의해 빛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약한 코로나 관측이 쉽지 않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망원경의 해상도 역시 문제로 작용한다. 결국 개기일식이 발생하면 '달'이라는 자연 차폐막을 이용해 태양의 코로나를 가장 면밀하고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다. 태양의 지름은 달의 지름보다 약 400배 크지만 달보다 약 400배 멀리 떨어져 있어 달과 태양의 겉보기 직경이 비슷하다. 달과 태양 사이에 만들어진 '400'이라는 숫자 때문에 인류는 태양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점도 경이롭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21일, 미국 50여 곳 지역에서 거대한 관측용 기구를 띄운다. GPS 위성과 연결된 관측용 기구는 상공 30㎞까지 올라가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일식을 관측한다. 애드벌룬에는 비디오 카메라와 함께 대기 상층의 기상 상태를 파악하는 '라디오존데'가 탑재돼 있다.

NASA는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함께 일식이 일어날 때의 기압, 온도, 습도 등의 변화를 관측한다. 또한 애드벌룬에서 찍은 일식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천문연구원도 와이오밍주 잭슨시에 개기일식 원정 관측단을 파견해 코로나 관측을 진행한다.

다음 개기일식은 2019년 7월 2일 태평양, 칠레, 아르헨티나 지역에서 관측 가능하다.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다음 개기일식은 2035년 9월 2일 오전 9시 40분경 북한 평양 지역,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서울 지역에서는 부분일식으로 관측 가능하다. 만약 2035년 통일이 된다면 한국 과학자들도 평양에서 개기일식을 보며 코로나를 연구할 수 있다.

1919년 5월 관측 때 태양 빛휘어짐 확인…상대성이론 입증해
개기일식과 과학의 진보


인류는 태양 코로나 관측을 통해 조금씩 진보해왔다.

1806년 스페인의 천문학자 호세 호아킨은 미국 뉴욕에서 일식을 관찰한 뒤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태양 주변에 빛나는 현상이 마치 '왕관(crown)'과 비슷해 이름을 '코로나(coronal)'로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당시 호아킨은 "코로나는 달의 대기가 아닌 태양의 대기"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많은 천문학자들이 개기일식 현상을 바라보며 코로나를 연구했다.

1842년 7월 8일 진행된 개기일식을 관찰한 영국의 천문학자 프랜시스 베일리는 코로나가 태양 대기의 일부임을 밝혔으며, 1940년 역시 영국의 천문학자 로더릭 레드맨이 코로나의 온도가 태양 표면보다 높음을 알아냈다.

코로나의 온도를 알아내기 전인 1919년 11월 10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1단짜리 기사는 개기일식으로 인해 '정적인 우주관'에서 '동적인 우주관'으로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영국의 천문학자인 아서 에딩턴은 1919년 5월 29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개기일식을 관측해 태양 주변의 빛이 휘어짐을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상대성 이론'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큰 물체 주변에는 시공간이 휘어진다. 에딩턴은 개기일식이 발생할 때 수성의 빛을 관찰, 태양의 중력에 의해 빛이 미세하게 휘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코로나는 지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됐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입자다. 태양 표면의 흑점에서는 가끔 폭발이 일어난다. 이 폭발과 함께 코로나에 있는 입자들이 우주로 방출된다. 이를 '태양폭풍'이라고도 부른다. 2001년 일본 아스카 위성은 태양폭풍을 맞고 궤도를 이탈했으며 1997년 미국 AT&T 위성은 수명이 단축됐다.

더 큰 문제는 지구에서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 방출로 만들어진 태양폭풍은 자석과 같이 N극, S극을 갖고 있다. 지구 역시 하나의 큰 자석이다. 북쪽이 S극, 남쪽이 N극이다. 자기장은 N극에서 나와 S극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태양폭풍의 자기장과 지구의 자기장이 반대일 경우, 지구의 자기장이 교란되는 '지자기장 폭풍'이 발생한다.

임은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자기장 폭풍으로 지구 자기장이 잠시 열리게 되면 고에너지 입자들이 쏟아져들어와 전자기기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현상은 2~4일 동안 지속될 수 있다. 1989년 발생한 태양폭풍이 지구에 지자기장 폭풍을 일으킨 대표적인 예다.

당시 태양폭풍으로 캐나다 퀘백주 전체에 정전이 일어났으며 심지어 달리던 자동차도 고장으로 멈춰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은경 선임연구원은 "코로나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상의 기작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며 "또한 인류가 알지 못했던 태양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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