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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취약 업종 구조조정 중간 점검 조선·해운 회복세 불구 애물단지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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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대우건설….

끝 간데없는 실적 부진, 한계기업 등의 오명으로 시끄러웠던 회사들이 최근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흑자전환에 성공했는가 하면 주가도 상승세가 뚜렷하다. 정부가 취약 업종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선정, 공적자금 투입 등 내홍을 겪고 난 이후 결과다.

2015년 시작된 취약 업종 구조조정이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중간 점검해봤다.

매경이코노미

▶구조조정 언제 시작됐나

▷2015년 ‘5대 취약 업종’ 메스 들어

정부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건 지난 2015년 하반기다.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 등 대외 악재가 겹치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수가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2500개가 채 안 되던 한계기업은 2015년 3278개까지 급증했다. 해운업은 더 심각했다. 2015년 한계기업 비중은 18.6%로 2010년(8.8%)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상황이었다. 같은 기간 조선업(6.2%→14.7%)과 철강업(4.6%→12.3%) 처지도 비슷했다. 한진해운·현대상선·대우조선해양 등 각 업종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누적 적자도 계속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2015년 10월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산업·기업 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5대 취약 업종을 선정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취약 업종으로는 한계기업 비중이 높고 과잉공급으로 인한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해운·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 등이 꼽혔다. 정부는 그해 12월엔 조선·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다. 조선업은 산업 전반에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집 줄이기를, 해운업은 개별 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방향을 내놨다. 지난해 4월엔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구조조정을 기업 상황과 업종 특성에 따라 경기 민감 업종·상시 구조조정 업종·공급과잉 업종 등 3가지로 분류해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조정 3트랙 추진’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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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운업계 1위였던 한진해운은 지난 2월 파산 선고를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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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열등생은

▷해운·조선 업종 가장 심각

다양한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업계 상황은 한동안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운·조선 업종이 특히 그랬다.

국내 해운업계 부동의 1위 기업이었던 한진해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해 8월 채권단 신규 지원 불가 결정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한진해운은 지난 2월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현대상선 역시 2013년 이후 지속했던 자산 매각에도 불구, 유동성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2월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조선 3사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문제가 심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기준 약 2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해양플랜트 등 외형 위주의 수주 정책과 무리한 해외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2015년 말 국책은행으로부터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신규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분식회계를 통한 경영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며 약 45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서도 대우건설, 삼성물산, 포스코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이 잇달아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한 지 어느덧 2년. 지난했던 구조조정의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던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은 일차적으로 일단락되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차분히 메우고 있는 모습이다. 한진해운 주력 노선이었던 미주서안 노선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최근 크게 끌어올렸다. 미국 해운 전문매체 JOC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현대상선의 미주서안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77% 대폭 증가했다. 시장점유율도 4%에서 7.4%까지 늘렸다. 미주 노선 선복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며 실적 개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빠져나왔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015년 2007%에서 지난해 349%까지 떨어졌다.

대우조선해양도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232억원을 기록하며 2012년 이후 5년 연속 지속되던 적자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 2분기엔 1분기 두 배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이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엔 1조6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을 담은 5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던 STX조선해양은 조기 졸업에 성공했다. 서울회생법원은 STX조선해양이 회생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판단해 회생절차를 지난 7월 2일 종결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해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에 제출했던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안 이행률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도 현재 약 50%의 자구안 이행률을 보이고 있고 향후 판교 R&D센터와 삼성호텔 등의 매각을 완료하면 그 속도가 더 붙을 예

정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한시름 놓게 됐다. 지난해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2년 전과 같은 수준인 B등급을 회복한 것. 지난 7월 금융위원회는 산은과 수은의 평가 등급을 기존 C등급에서 B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이 건전성 관리, 자금 조달, 일자리 창출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고 특히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데 따른 영향으로 지난해 C등급에서 올해는 한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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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은 올 1분기 5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사진은 지난해 매각한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


▶남은 구조조정 과제

▷동부제철·금호타이어 매각 첩첩산중

구조조정에 성과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업 정상화’까진 취약 업종 대부분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국내 해운업만 봐도 외형은 여전히 반 토막 나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정보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대상선·고려해운·장금상선·SM상선 등 국내 컨테이너선사 선복량(수송 능력)은 58만TEU. 지난해 8월 법정관리 이전 한진해운·현대상선 양대 체제(106만TEU)의 절반 수

준이다.

조선업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실적이 개선됐다지만 매출 감소와 구조조정 효과에 따른 ‘불황형 흑자’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수주가 실제 일감에 반영되기까지의 시차도 고려해야 한다. 올해 새롭게 수주한 실적은 아직 생산 현장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수주 잔량이 절대적으로 적어 일감 부족을 해결하기 어렵다. 국제유가 하락세도 업계엔 악재”라고 말했다.

더불어 정부가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했음에도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애물단지’ 기업들이 적잖다. KDB생명, 금호타이어, 동부제철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아직도 채권단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진척이 더디다.

한편 5대 취약 업종으로 분류됐지만 건설·철강·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것도 챙겨볼 사안이다. 이들 업종은 2015년 지정 당시와 달리 지난해 업황이 개선되면서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압박에서 다소 자유로워졌다.

애초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방향이 조선·해운과 다른 탓도 있다. 지난해 4월 정부에서 발표한 구조조정 추진 계획을 들여다보면 조선·해운(경기 민감 업종)과 달리 철강·석유화학은 공급과잉 업종으로 분류돼 있다. 경기 민감 업종은 정부 협의체와 채권단 주체로 자율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에 나서지만 공급과잉 업종은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에 따라 구조조정이 기업체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들 업종 구조조정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성장세가 꺾이면서 건설 업종 구조조정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 8월 금감원 발표 자료에서 건설 업종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이 지난해 6곳에서 올해 8곳으로 증가한 게 단적인 예다.

정부 차원에서 철강·유화(석유화학) 부문 구조조정을 챙길 가능성도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철강, 유화 해당 채권은행들이 면밀히 지켜봐서 때를 놓치지 않고 과감히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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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중간평가·대안

▷일본식 관민펀드 도입해볼 만

매경이코노미는 전문가 15명에게 의뢰, 2015년 이후 구조조정 중간평가를 점수화해봤다. 전문가들은 10점 만점에 평균 4.7점을 줬다. 응답자 수의 절반에 가까운 7명은 5점 미만을, 최고 점수라 해도 6점을 넘지 못했다. 최하 점수를 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조선·해운이 나아지는 듯하지만 이는 현행 국책은행을 동원해서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면 유사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뭘까.

박상인 교수는 “법원 회생절차가 있는 만큼 시장 중심 구조조정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국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이 더디고 단기 차익을 노린 매각이 이뤄질 수 있으므로 민관 주도 방식이 효과적이란 주

장이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 방식이 문제가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시장에만 맡겨서도 안 된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이나 매각 등의 환경을 만들어 인수 기업과 연결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공적자금 투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2003년 한시적 주식회사인 산업재생기구(IRCJ)를 만들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최종 의사결정은 정부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된 기구가 담당하고, 채권 매입 가격은 시가로 결정해 시장원리와 가격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공적 기능과 시장원리가 공존하는 ‘관민펀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여파는

점유율 2.2% 하락…‘국부유출’ 우려 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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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법정관리 신청, 올해 2월 서울 법원서 파산 선고.

한때 세계 시장점유율 8%를 차지하며 7위 선사로 이름을 날렸던 한진해운의 말로다. 파산 당시 ‘국부유출’ ‘물동량 감소 직격탄’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파산 이후 한진해운의 북미 항로 점유율 중 6.2%를 외국 선사들이 가져가고 200만TEU의 물동량과 3조원의 운임 수입이 증발할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부산항 등 국내항만의 처리 물동량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 우려했다.

파산 선고 후 6개월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시장점유율은 해외 업체에 내준 게 맞다. 하지만 우려했던 6% 이상은 아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미주서안 노선이 주력이었던 한진해운의 시장점유율은 2016년 8%였는데 이를 1년 만인 올해 6월 기준 현대상선이 7.4%, SM상선이 2.4%를 가져가면서 국내 해운사가 한진의 점유율을 상당 부분 대체했다. 실질적으로 해외 업체에 내준 점유율은 2.2% 정도”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파산 당시 우려했던 물동량 축소도 상당 부분 회복되고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한진해운이 주로 이용한 부산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1945만TEU였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인 올해 상반기 물동량은 1016만TEU로 이미 지난해 연말의 절반을 넘어섰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파산 당시 한시적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이후 회복했고 연말에 물동량이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여파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해운동맹에서 한국 업체만 낙오자가 될 것이란 우려 또한 현대상선이 올해 4월 세계 1·2위 선사인 머스크·MSC와 결성한 해운동맹 ‘2M+H 얼라이언스’에 편입되면서 걱정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게 업계 총평이다.

설문 작성에 도움 주신 분(총 15명, 가나다순) 김문겸 숭실대 벤처중소학과 교수,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 김치호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류재욱 네모파트너즈 대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수성 롤랜드버거코리아 대표,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인기 국제회계사연맹 차기 회장,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수호·노승욱·나건웅 기자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1호 (2017.08.16~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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