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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직종 다르니 노조 따로 만들게 해달라"…법원의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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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LG생활건강 판매직의 '별도노조' 허용 요구…법원 "분리실익 없고, 노사갈등 초래"]

머니투데이

/그래픽= 임종철 디자이너


이미 설립돼 있는 노동조합의 주류 직군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교섭창구를 만들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적법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판매직군 근로자에 대해 별개의 교섭창구를 마련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LG생활건강이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중노위의 결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문제의 발단은 LG생활건강의 판매직군 근로자들이 별도의 노동조합을 설립해 종전 노동조합과 별도로 사측과의 교섭창구를 마련하려는 데서 빚어졌다. 올 1월 기준으로 LG생활건강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총 4584명 가운데 사무직과 생산직은 각각 2354명, 757명이고 판매직군은 1473명이었다.

LG생활건강에는 소속 근로자 전부를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조가 이미 2001년 설립돼 활동 중이었다. 이 노조는 생산직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판매직군 근로자 약 360명은 사무직·생산직과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등 이유로 별도의 교섭창구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노동조합법은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천명하고 예외적으로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유무나 교섭의 형태·관행 등을 감안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을 때만 교섭창구 분리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중노위는 △생산직군에 비해 판매직군 급여가 전반적으로 낮아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 △생산직·판매직의 정규직 채용과정에 차이가 있고 양 직군간 인사교류도 거의 없다는 점 △생산직 위주의 기존 노조가 판매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교섭단위를 분리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실제로 LG생활건강의 생산직 근로자의 월 평균 급여는 433만원인 반면 판매직 근로자의 월급은 평균 291만원에 그친다. 이밖에 두 직군은 업무 시작·종료시간이나 정규직 채용 방식 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중노위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평균 근속기간을 보면 판매직은 4.9년에 불과한 반면 생산직은 18.1년"이라며 "판매직·생산직의 월 평균급여 차이는 평균 근속기간의 차이에 따른 것에 불과하고 그 외 호봉 테이블 등의 차이는 업무의 내용과 특수성, 난이도의 차이에 당연히 발생하는 차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노위가 별도노조 설립의 근거로 봤던 '근로기간의 현격한 차이'를 인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또 LG생활건강이 사무직·생산직·판매직 여부를 불문하고 주택자금, 경조지원, 자녀교육비, 실손의료보험, 건강검진, 장기근속수당 등 복리후생 제도를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고 기존 생산직 위주의 노조와 단체협약에서 새로 정한 복리후생 제도를 노조 미가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사무직·생산직의 경우 소정의 인턴과정을 거쳐 수습기간을 지난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과 달리 판매직은 6개월간 계약직 과정을 2회 거친 후에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고용과정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이 역시 업무상 특성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대등 원리 하에 적정한 근로조건의 구현이라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요구되는 불가피한 제도"라는 과거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하며 "판매직만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할 경우 다른 직군과 판매직 사이에 다른 단체협약이 체결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노조 상호간 또는 노사간 갈등과 교섭 효율성 저하, 노무관리상 어려움 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업무 특성에 따라 형성된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판시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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