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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동칼럼]서남대 폐교 방침은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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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달 초 교육부는 서울시립대와 삼육대의 서남대 인수 제안을 수용불가로 판단하며 사실상 서남대의 폐교를 택했다. 지난 11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서남대 정상화 공동대책위’를 면담하며 폐교 방침을 확인했다. 김 장관은 일주일(!) 내에 인수조건을 충족시킬 곳이 나오면 재고하겠다는 묘한 발언도 했는데, 사흘 후 한남대가 기다렸던 양 인수 검토를 밝혔다. 설립자인 이홍하 전 이사장의 횡령액 333억원을 먼저 해결하라는 교육부의 인수조건부터가 논란거리이니 새 장관이 벌써 노회한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듯하다.

‘인구절벽’을 눈앞에 둔 한국 사회의 낮은 출산율은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 급감 탓에 향후 7~8년간 대학 입학정원 약 10만명을 줄여야 한다. 단순계산으로 서울대(입학정원 3300여명)를 30개나 없애는 엄청난 일이다. 이럴수록 폐교를 능사로 삼기 전에 대학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치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며, 교육부가 추진해온 방식이 아닌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한다.

부실대학의 폐교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가능한 한 다른 대학과의 통폐합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 폐교는 정당하고 단호한 조치 같지만 대학 구성원과 지역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며, 현행법의 허점 탓에 부실을 저지른 당사자에게 남은 재산이 돌아갈 수 있다. 서남대 옛 재단 측이 자진 폐교를 선언했던 속셈을 기억해야 한다.

서남대는 ‘교육 마피아’의 대표적 적폐이다. 2012년 무려 1004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되어 복역 중인 이홍하는 서남대(1991) 외에 광양보건대(1992), 한려대(1995), 광주예술대(1997), 신경대(2005) 등을 세워 비리를 일삼았다. 그러나 20년 넘게 감독기관인 교육부는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광주예술대는 개교 3년 만인 2000년에 교비 횡령으로 대학 사상 최초로 강제 폐교되었지만, 이 일도 학생과 교직원을 희생시키며 ‘사학 소유주’만 살린 결정은 아닌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부실대학에서 부실한 것은 사학 소유주와 비호세력이지 학생과 교직원이 아니다. 그런 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학생, 전문성을 갖춘 교원, 성실한 직원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는 이 중대한 문제를 외면해왔다. 실직하게 된 교수와 직원을 나 몰라라 하거나 심지어 불법비리의 공범집단으로 싸잡아 몰기도 한다. 학생까지 방치할 수 없으니 타 대학 편입을 추진하지만, 인근 대학들이 갖가지 어려움 탓에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 특별편입 실적은 부진하다.

폐교가 불가피한 대학도 교직원의 역량을 살리고 학생 피해를 줄일 방안이 많다. 신입생 모집을 중단해도 교육여건이 허락하면 재학생을 위해 학교를 당분간 운영하거나, 교육여건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과의 재학생을 주변 대학에 위탁교육하며 점진적 통폐합을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폐교 명분만 확보되면 학교 문을 바로 닫으려 든다. 구조조정 실적에 대한 조급함 뒤에 교육 마피아의 어두운 과거를 서둘러 덮으려는 조바심이 느껴진다.

큰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려면 당연히 기금이 필요하다. 때로 국민경제를 위해 사기업 구조조정에도 혈세를 쓰는데, 공공의 자산인 대학 구조조정에는 말할 것도 없다. 대학 통폐합 후에 남는 자산의 순차적 매각으로 기금 환수도 가능하다.

반면 폐교에 따른 청산은 학교 자산이 빨리 팔리지 않으면 난관에 빠지며 대량 실직, 악성 임금체불 등 부작용이 벌어진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원기관과 기금을 설립하여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며 통폐합 사례는 많지만 폐교된 대학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교육부와 손잡고 상정한 대학 구조조정법안에 이런 장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히려 이 법안은 사학 소유주가 쉽게 학교를 해산하고 재산을 챙겨가도록 돕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조조정 기금이나 지원기관을 세워도 교육부에 몽땅 맡길 수는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양심적인 교육관료가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온다. 덧붙여 입학정원을 줄이자고 대학 숫자마저 마구 줄일 일은 결코 아니다.

작은 대학도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대학이 평생교육, 재교육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의 탄탄한 연계를 확보한다면, 약간의 외부 지원으로도 지역 경제와 선순환 효과를 내며 대학이 특성화되어 발전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학개혁의 핵심은 올바른 구조조정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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